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또다시 여러분 모두에게 참된 평화를 내려주시도록 기원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는 믿는 이들에게만 가능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 평화가 아무런 효력을 발하지 못합니다. 부활을 느끼고 체험하기 위해서는 아주 강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고단과 십자가상 죽음을 목격하고 이를 확인지만 그 중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드러내셨읍니다.
그러나 비록 아주 소소의 제자들만이 예수님의 부활을 앞고 증거하였지만 그 증거는 소수의 증거로 시간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갈수록 보다 많은 사람에게 확산되어 풍부하고 확고부동한 사실로 변화되어갔읍니다. 그것은 소수의 증거를 받아들인 많은이들이 스스로 믿음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나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시대는 절망과 좌절의 시대였읍니다. 그들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의 압제는 갈수록 강화되었고 이스라엘동족의 지도자들은 이 압제자의 충복으로 백성을 찬탈하는 일을 도울뿐,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읍니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이 승승장구하는 시대였읍니다.
불의와 전적으로 타협하는 이들이 갈수록 득세하는 시대였읍니다. 불의를 용납하지 못하여 생명을 내걸고 조국을 위해, 이스라엘의 민족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싸우는 소수의 저항세력이 있었으나 그들의 안간힘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채 항상 좌절되고 말았읍니다.
이러한 시대에 예수께서 오신고 새 세상이 임박했다고 선포하셨읍니다. 불의한 권세가 물러가고 힘없는 사람도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세상, 슬픔과 눈물로 찌든 얼굴이 환하게 피어날 세상, 음모와 모략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착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올바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 박해하는 자의 폭력이 패배하고 의인이 승리하는 세상이 바로 문밖에 다가왔다고 선포하셨읍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이 세상은 당시의 사회를 아무리 샅샅이 뒤져보아도 전혀 그 실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는 꿈과 같은 세상이었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 새 세상이 반드시 찾아오리라고 외치셨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로 이 새세상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자기 모습을 드러내셨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순교선열들을 보십시오.
우리의 순교선열 또한 하느님이 마련해 주시는 새세상을 굳게 믿고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들은 이세상의 지위와 권력, 부와 명예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게 그들을 짓누르고 유혹하여도 그러한 세력은 몰락할 것이며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의로운 자들의 새 세상이 반드시 도래할 것임을 믿고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들의 이 믿음은 참으로 진실하고 굳세었기에 그들은 자신의 입신출세는 물론이고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하면서도 그 믿음을 함께 지켜나가고 새 세상을 함께 맞이하려했던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2백주년을 맞아「이땅에 빛」을 비추고자 하는 우리에게 다시한번 새 세상에 대한 이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분단된 이 나라의 정치적 운명을 걱정하고 정의가 결핍된 상황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루어질 수 없을것 같은 새 세상이지만 하느님 안에 믿고 희망하십시요.
이 나라의 위태로운 경제를 걱정하고 의롭지 못한 비정상적 경제활동과 구조를 우려하는 이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루어질 수 없을것 같은 새 세상이지만 하느님 안에 믿고 희망하십시요.
폭력과 방탕이 춤추는 이 사회를 한탄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루어질 수 없을것 같은 새세상이지만 하느님 안에 믿고 희망하십시요.
외적으로 갈수록 풍요로와지고 비대해지는 반면 내적으로 빈약해지고 메말라가는 우리나라의 교회를 슬퍼하고 지탄하는 이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루어질 수 없을것 같은 새 세상이지만 하느님 안에 믿고 희망하십시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당신 부활로 우리의 이 믿음과 희망에 대한 보장을 해 주셨읍니다. 또 새 세상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희망이 진지하고 성실한 것이라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앞에 당신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시고 당신의 평화를 나누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새 세상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희망이 진지하고 성실해야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수동적인 자세로 일이 이루어지기를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불의와 폭력과 죄악에 대하여 강력한 불신과 배격의 의지를 구체적으로 키워나가며 새 세상의 도래를 위해 자신의 능력과 활동을 제공하는 능동적 삶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단숨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읍니다. 결정적인 활동은 이미 부활하시고 승리를 거두신 그리스도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는 이 그리스도의 활동을 굳게 믿고 의지하면서 우리 자신의 노력도 최대한으로 봉헌하여 그 분의 구원사업을 도와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을 본받아 진리를 위해 몸바치고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세계는 무자비한 전쟁이 수많은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있고 상승일로에 있는 동서 양대 진영의 군비경쟁은 인류의 생존을 근원적으로 위협하여 평화란 도저히 불가능한 꿈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실현할 수 있읍니다. 우리가 믿고 희망하고 봉헌하면 하느님은 도와주실 것이고 새 세상은 반드시 오고 말 것입니다.
이제 곧 우리나라를 방문하시는 교황성하께서도 이 복음을 외치시기 위해 자신의 전존재를 봉헌하시며 노령에도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으시고 땅끝에서 땅끝까지 달리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믿음의 맏형님이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일치하여 새 세상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봉헌을 완성해 갑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축복과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1984년 부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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