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성교회 교우들이 교황께 올리는 두번째 탄원서는 다산 정약용 요한이 초를 잡았고 권철신 암브로시오 이름으로 쓰여졌다.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1818년 고향 마재(馬峴 경기도 양주군 소재 능내리)에 돌아온 뒤 조카인 정하상 바오로를 위해 초를 잡아주었다는 것이다.
그럼 지난회에서 이어진 두번째 탄원서를 계속 옮겨보기로 하자.
공경하옵는 교황성하、저희들은 괴로움과 고민에 짓눌려 있사와 이 사정을 성하께 겸손되이 사뢰고 성하의 깊은 배려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순교하신후 (註=1801년 5월 31일)조선에는 끊임없는 박해로 교회의 전파가 막히게 되어 이제는 겨우 1천명가량 되는 교우가 숨어서 믿음을 전하고 그것을 증거해 나가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조선은 천주교의 교리가 아무리 진리라하여도 이대로 두면 점점 쓸데없이 되어갑니다. 교리는 저희들의 정신이 둔하므로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천주의 은총은 막혀가고 있읍니다.
늙은이나 병들어 죽는 사람들은 종부성사를 받지 못하고 슬슴에 쌓여 무덤속으로 들어가오며 살아남아 그들의 뒤를 잇는 저희들은 또한 비탄속에 잠겨 삶에 지치고 있어 슬픔과 고뇌는 점점 더 저희들의 가슴을 억누르옵나이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여러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저희들의 목자이신 북경주교님께 여러번 청원을 하였다옵나이다. 북경주교님은 비록 저희의 간절한 청을 듣고 감동은 하셨으나 죄많은 영혼을 성사집행으로 재생시키고 다시 뜨겁게하여 줄 신부들을 보내주시지 못하였읍니다.
지금은 중국에도 신부들이 모자라 조선에 보낼수 없지만 마카오에 있는 선교사들은 비탄중에 있는 저희들을 훌륭히 구원하여줄 수 있다고 아뢰옵나이다.
그리고 신부들을 배로 보내실때 그배는 이렇게 하여 야하고、선원은 몇명이나 있어야하고、해안에는 어떤위험이 있으며 상륙하는데 가장 유리한 지점은 어디이며 관리들과 접촉하려면 어떤절차를 밟아야하며 그들의 악의에 대하여는 어떤 경계를 하여야 되는가를 자세히 아뢰옵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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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번때 탄원서를 가지고 1825년 10월 24일 서울을 떠난 聖人 정하상 바오로와 聖人 유진길 아우구스띠노가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만리장성을 극비에 돌파、
북경 남당에 도착해보니 삐례스 신부가 북경교구장대리로 계셨다.
정하상과 유진길은 교구장대리에게 탄원서를 교황성하께 전달해달라고 간청했다. 삐레스 신부는 이 편지를 거듭읽으면서 몇번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삐레스 신부는 즉시 탄원서를 「마카오」에 있던「로마」포교성성 직속경리부로 보냈다. 그곳 경리부 차장 움삐에레스 신부는 탄원서를 라띤어로 번역하여 1826년 12월 3일「로마」교황청에 전달했다.
당시 삐오 12세 교황께서는 친히 탄원서를 받아보시고 머나먼 동방의 조선성교회를 궁휼히 생각하시어 특별배려를 계획하셨다. 즉 북경교구로부터 조선교구를 독립설정시키려다가 그만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셨다.
한편 정하상은 북경에서 삐레스 교구장대리로부터『그대들이 하는 성업을 적극 뒷받침해주고 이 탄원서도 교황성하께서 읽으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소이다』라는 위로의 말씀을 듣고 귀국했다.
청원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고 돌아온 두사람은 남명혁·이광현·이광렬·남이관 등 당시 조선성교회 재건운동의 중주역할을 하던 교우들께 낱낱이 보고했다. 이보고를 직접들은 교우들과 조선교회 전체는 벅찬 기쁨과 설레임속에 천주님을 찬양했다.
그후 다시 다섯번째로 북경을 찾아간 정하상은 삐레스교구장대리로부터『신부를 한분 보내주겠소. 조선으로 돌아가기전 한번더 와주시겠읍니까?』라는 말씀을 듣고『이것이 꿈인가? 생신가?』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한다.
1주일후 다시방문한 정하상에게 교구장대리는 손을 내밀어 굳게악수를 청하며『당신들이 돌아간뒤 1주일간 곰곰히 생각하고 갖은 궁리를 다했소이다. 또 천주님께 애타게 기도를 했읍니다. 그래서 한가지 결심을 한 거지요. 즉 멀지않아 조선에 신부 한 분을 기필코 파견할것을 지금여기서 당신들과 약속합니다』라고말했다.
이약속은 정하상이 23세때인 1816년 10월 14일부터 북경을 오간지 다섯번째에야 얻은 쾌재였다. 기쁘고 반갑고 영광스런 소식을 듣게된것이었다.
허허벌판위에 암울한 구름으로 뒤덮혀있던 조선교회、가시덩쿨에 찢기어 병들고신음하고 죽어가던 조선교우들에게 부활의 빛나는 나팔소리가 울려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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