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안위와 감상에 붙잡혀서는 안된다. 그러나 많은 시인들이 여기에 붙잡혀앉아 머리속 관념으로만 읊조리고 있음을 본다.
홍윤숙 시인은 지나온 길을 한번 되돌아볼 만한 삶의 단계에서、역사에 눈뜨고서 40년쯤의 광야를 맨발로 걸어 온 자신을 말한다. 철없었음을、무릎팍 깨었음을 말하기도 한다. 이겨레 안에 삶을 받은 이들 누구나 아직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대목에서도 시인은 자칫 감상에 빠지기 쉬웠다 군데군데에 그런마음 갈피들이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홍윤숙 시인은 원래 속직하고 치열한 몸짓을 드러낸다. 낭패감을 차라리 폐가로 표현된다. 「시간의 변경/영혼의 荒地에 내가 닿았다/혼백처럼 떠오르는/폐가의 滿月/이따금 황량한짐슴의 울음소리/진 뜰을 메운다」(「家」3) 「하루에 열두번씩 죽는법 배워요」(「사는 法」1)이렇게 죽는법이 사는 법의 근거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의 고뇌는 간단히 포기하는 퇴영도 허무도 아니다.
「기다려야 해/네거리 신호등 빨간불 앞에선/가던 길 멈추고 한숨 돌리고잊/었던 하늘 한번 다시 보고/흘러내린 행낭 고쳐 메야해」(「사는 法」4)오히려 여유를 터득한 연륜의 저력을 보인다. 이러한 끈질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이땅의 역사를 가슴에 다져서 챙겨넣은 데서만 얻어질수 있었다.
「할아버지 여덟새 무명 동저고리 바람으로/만주 북간도 피멍들어 넘나들던/개관의 주막 서러운 봉논잠 깨울까봐/제국주의 창검 아래썩둑썩둑 잘리는 생초목 될까봐/할머니 긴 밤 심지불돋우며/아주까리 기름등잔바작바작 태우던/근심으로 왔어요、눈물 한숨 단근질로왔어요/그때 삼월은」(「다시삼월에」1)
이러한 역사의 길을 살아온 겨레는 필경 밝음의 한시대를 누려야할 것이다. 이것은 영악한 앙갚음이 아니고 증오의 벼름이 아니다. 이것은 정당한 자기육성이며 빛의 드러냄이다. 이 귀결에 향하여 홍윤숙 시인은 아직 너무 젊게 노래하고 있다. 「때가 오면 관솔에 기름 부어/한 솔기 불꽃으로 길을 밝히고/눈부신 이마로 신들메를 매어요/들찔레 덩굴로 허리 동이요/바람부는 벌판에 장대로 서서/한 시대 어둠을 허물어 내어요/두 팔에 집채같은 밤을 함께 안아요/어디서나 우리들의 言語는 빛이었어요」(「사는법」6)
이야말로「이땅에 빛을!」이라는 命題에 어울릴만한 이시대 우리의 삶의 절실함이며 진실이다. 단순히 경건하게 하늘로부터 빛이 쏟아져 내리기를 빌어서는 안될것이며、스스로 맨발로 광야를 달려가야할 것이다. 한 초로의 시인으로서 치열한 젊음을 흡뿌리는 것을 보면서、오늘우리의 삶과 역사에 새삼 투박한 활력이 아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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