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선교사를 입국시키려는 열망이 이루어진 것은 끊임없는 교우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특히 북경을 왕래하면서 그곳에 있던 주교와 직접 의논을 하고 조선 교우들의 상황을 전달하던 사람들이 그 핵심인물이었으며、유진길도 바로 그러한 일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유진길 아우구스띠노는 1791년(정조15년)유명한 역관(譯官)의 가정에서 태어났다。그의 조상들은 오랫동안 중요한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본받은 아우구스띠노도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심 하여 20세 이전에 이미 유식하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다만 그는 이 세상의 영광과 쾌락을 조금도 탐내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탐구하는데만 열심이었다。불교나 도교를 통하여 인간과 세상의 기원 및 종말을 분명히 알고자 그는 10년 이상을 노력 하였다。
그러나 생에 대한 진리의 원칙은 발견할 수 없었고 정신적으로 불안만 더해갈 뿐이었다。성장해 가면서 아우구스띠노는 천주교와 천주교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특히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다주었다。그래서 이때부터 천주교 서적을 구해보려고 하였지만 천주교인들은 밀고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진심을 이야기하지 아니하였다。그런던 중 하루는 장농에 바른 종이조각을 들여다 보다가 각혼(覺魂)생혼(生魂) 영혼(靈魂)이라는 글자가 씌여진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천주실의(天主實義)」라는 책의 일부분이었다。그는 할 수 있는 대로 그것을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가 분명치 않아 원하던 바를 얻을 수가 없었으며、이에 진리를 가르쳐 줄 사람을 찾으러 다녀야만 하였다。마침내 그는 홍암브로시오를 만나 그에게서 교리해석을 듣고 또 다른 책까지 얻게 되었다。이제 아우구스띠노의 마음에는 밝고 분명한 주님의 말씀이 새겨지게 되었다。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깊은 신앙의 은혜를 내려주셨고、그는 곧 신앙의 진리를 믿기 시작하였다。당시 정하상(丁夏祥)과 동료 교우들은 선교사를 모셔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아우구스띠노는 이러한 일에 참가하려는 뜻을 가지고 정하상과 친밀히 지냈으며 될 수 있는 한 빨리 북경에 가고자 하였다。그의 직분이 조정의 역관이었으므로 그가 북경을 왕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의심도 받지 않을 뿐더러 교우들의 직무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입교한 이듬해、즉 1824년에 그는 사신행차의 역관으로 북경에 이르러 아우구스띠노는 주교와 신부들을 찾아뵙고 성사를 받았다。그리고 조선 교우들의 처지를 주교와 신부들에게 설명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보살펴 주기를 간청하였다。조선 교우들의 열망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아우구스띠노는 정하상 등의 교우들과 공동으로 교황에게 서신을 올리기로 결정하였다。그 내용은 조선교회의 실정을 상세히 설명하고、선교사를 파견하여 그 자신들을 절망의 늪에서 구해달라고 하는 간청이었다。회답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합심하여 자신들의 언행으로 교우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셨으며, 여러 사람들을 입교시켰다。그렇지만 아우구스띠노는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끝내 신앙으로 인도하지 못하였다。단지 두 아들이 아버지를 본받아 열심으로 봉교하였으며、그 중 유대철(劉大喆)베드로가 후에 순교의 영광을 택하였다。아우구스띠노 등 교우들의 노력으로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이어 선교사들도 입국하게 되었다。그러나 그들은 정해박해로 인하여 많은 교우들의 순교를 보아야만 했고、끊임없는 탄압으로 자신들의 활동에 제약을 받아야만 하였다。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로 재차 탄압이 내려지게 되었다。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아우구스띠노도 외교인들의 눈에 발각되어 7월에 체포되었다。이 소식을 들은 집안 식구들이 몰려와서 그를 배교시키고자 하였으나、도리어 그는 천주를 위하고 또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골육의 사정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려하였다。포청에 이르러서도 아우구스띠노의 신앙은 변치 아니하였다。포장은 국왕의 녹을 받는 자가 오히려 법으로 금하는 일을 했다고 하여 혹독한 고문을 하였다。
곤장을 맞아 살이 헤어지고 주뢰를 받아 뼈가 어그러졌으나 그는 다만 선교사들을 모셔온 목적과 천주의 영광을 이야기할 뿐이었다。결국 형조로 옮겨져 사형선고를 받은 아우구스띠노는 가장 오랜 동료인 정하상과 함께 서소문밖에서 참수 당하였으니 이때가 9월 22일로 그의 나이는 4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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