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과 아벨(창세기 4ㆍ1─16)
카인의 이야기는 원조의 범죄 이후에 급속히 팽창해 가는 인간의 죄악상을 말해준다. 첫 인간의 죄는 하느님과의 친교관계와 남녀 간의 합일을 깨뜨렸다. 그리고 그 인간의 자손은 형제간의 관계를 경쟁자의 관계로 악화시켰다. 카인의 형제살해는 인간이 저지른 두번째 죄악으로서 첫번째보다 더 끔찍하다.
아담의 경우와 같이 여기서도 하느님은 인간의 범행현장에 계셨다. 그리고『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4ㆍ9)는 질문을 하신다. 이는『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3ㆍ9)는 물음과 같은 성격이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물음이다. 하느님은 범죄한 인간을 먼저 찾아 부르시어 죄로 인해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시켜 주려 하신다. 이에 대한 카인의 대답은 뻔뻔스럽다.
첫 인간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죄를 수긍했었다. 그러나 카인은『나는 모릅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하며 하느님까지 속이려 든다. 하느님은 아담과 그의 여인에게처럼 카인에게 후회하는 마음으로 죄를 고백할 기회를 주셨으나 카인은 파렴치 할뿐이다. 카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세는 그가 선행을 추구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죄악의 노예가 된 처지를 말해준다. 카인은 이미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다.
죄의 심판과 배려
카인은 그가 범한 죄의 추궁과 그에 대한 선고를 받는다. 그 죄의 막중함이『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보라』는 말로써 묘사된다. 죄를 범한 카인은 야훼의 면전을 떠나야 한다. 카인은 첫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된 후 자리 잡은 거처에서 또 다시 추방되어 떠돌이 신세가 된다. 범죄한 인간의 거처는 휴식도 평화도 없는 소외와 고독의 영역이다. 인간 상호간의 공존을 거부하는 자는 고독하게 버려질 수밖에 없다.
카인은 자신이 받게 될 벌을 예상하고 무서워 떨며 야훼의 자비를 탄원한다. 야훼 하느님은 이번에도 자비를 베푸신다. 카인에게 있어 야훼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된 것 자체가 사형에 못지않는 중벌이지만 그래도 그는 목숨을 보존할 보장을 받는다. 카인이 받은 이마의 표식(4ㆍ15)은 살인자의 표가 아니라 그의 생명을 지켜주는 보호의 표식이다. 이는 비록 살인자라 할지라도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없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이는 마치 나뭇잎으로 앞을 가리고 숨어있던 원조를 불러내어 튼튼한 가죽옷을 입혀줌과 같은 하느님 사랑의 배려이다.
카인과 셋의 족보(4ㆍ17─5ㆍ32)
카인의 족보는 다양한 문명생활의 면모를 전해준다. 이 족보는 카인의 후손보다는 인류의 발전에 대한 설명을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카인의 후예인 라멕의 복수심은 카인의 죄악이 확대됨을 나타낸다. 일흔일곱 갑절로 보복하리라는 라멕의 노래는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씀(마테18ㆍ22)과 대조를 이룬다.
셋은 아벨이 죽은 후 태어난 아들이다.
셋의 족보에는 열명이 조상이 열거되는데 이들 모두가 천년을 넘지는 못하지만 장수를 누린다. 선사시대에 관한 이 기록에 있어서 시간적 숫자는 현대의 역사적 단위로는 측정할 수 없다. 성서저자는 인간의 긴 수명으로써 광범위한 인류역사를 일정한 기간으로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족보에 나타난 수명은 또 다른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족보에는 세대가 지날수록 수명이 줄어들고 있다. 이와 같은 생명력의 감퇴는 인간의 죄악이 늘어간다는 은밀한 제시이기도 하다. 이는 장수를 하느님의 축복으로 보던 히브리 특유의 상징적 의미와도 연결이 된다.
족보의 지루한 도식에서 에녹에 대한 기술은 특이하다. 에녹은 이 지상에 사는 동안「하느님과 함께」생활했다고 두번씩 강조된다. 그래서 그는 죽지 않고 하늘에 들어 올림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 에녹의 전승은 완전하고 영원한 하느님과의 일치에 대한 인간적 갈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다른 선조들은 하느님을 떠나서 죄에 물든 삶을 살았음이 암시된다. 이처럼 태고사의 족보는 에녹과 노아 등 몇 의인을 제외하고는 범죄한 인간역사의 지속을 보여준다. 이 족보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품위와, 죄악으로 인해 짊어져야할 인간의 부담과, 현시적이며 영원한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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