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갔다. 2대 교구 장앵베르 주교와 그 밖에 모방, 샤스땅 신부들은 조선에 입국한 후 목자가 없었던 조선교회를 다시 부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탄압은 또 다른 시련과 함께 하느님의 영광을 그들에게 안겨 주었으며 조선 교우들의 지도자로서 활약하고 있던 정하상 유진길 등도 곧 선교사들의 뒤를 따라 순교하게 되었다. 한편 9월 26일에는 9명의 교우들이 서소문밖에서 영광의 칼을 받게 되었는바 이들은 허계임 남이관 김유리대 전경협 조신철 김제준 박봉손 홍금주 김효임 등이었다.
허계임 막달레나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번 언급한 바 있거니와 그녀는 기해년 7월 20일에 순교한 이영희 막달레나와 9월 3일에 순교한 이정희 바르바라의 모친이었다. 비록 남편을 입교시키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이렇게 두딸을 입교시켜 마침내 순교에 이르게까지 한 사실은 바로 그녀 자신의 신앙심을 잘 나타내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딸 바르바라로 하여금 외교인 청년과 결혼하도록 하려던 남편의 고집을 이겨내어 바르바라가 동정을 지킬 수 있도록 한점,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하여 두딸과 함께 시누이인 이매임 데레사의 집에서 생활했던 점 등에서 우리는 막달레나 개인의 희생이 많았다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데레사의 집에서 생활하던 중 박해가 시작되자 그녀는 딸들과 함께 포청에 자수하기에 이르렀다. 포청에서 문초를 받은 이후 그녀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여 혹형을 잘 참아냈다는 사실 외에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순교한 두 딸의 어머니로서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했던 것은 바로 주님의 은총으로 천상의 영광이 그녀의 머리에 얹혀진 순간이었으며, 이때 그녀의 나이는 67세였다.
허 막달레나와 함께 순교한 사람들 중 당시 교회의 회장으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들이 두명 있었으니, 그 중 한명이 남 세바스띠아노였다.
그는 1780년(정조4년)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님들은 18세기 말엽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대표적인 세도가 안동 권씨 집안의 딸이었던 모친은 젊어서 세상을 떠나고 부친 남필용(南必容)은 1801년(순조1년)에 고발되어 5월 10일 강진(康津)으로 유배되었다가 얼마 후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당시 20세가량 되었던 세바스띠아노는 경상도 단성땅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결혼을 하였다. 부인은 그를 따라서 1839년 12월 29일에 순교한 조증이(趙曾伊) 바르바라이다.
아직 성세도 받지 못하였던 그가 단지 천주교에 대하여 아는 것은 매일 저녁 빠뜨리지 않고 외우는 주의 기도와 성모송밖에 없었다. 자녀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첩을 얻었는데 그것이 중한 죄가 된다는 사실을 조금도 알지 못하였다. 40세에 이르러 병을 앓고 있던 중 어떤 교우의 가르침을 받은 후부터 그는 첩을 멀리하고 성세를 받아 비로소 교우다운 생활을 하였다.
회개한 후에 세바스띠아노는 그 동안의 허송세월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정하상 등 몇몇 교우들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의주(義州)까지 가서 유방제(劉方濟) 빠치피꼬 신부를 모셔왔으며, 신부를 자기 집에 영접하여 모든 시중을 들었다.
박해 시초에 세바스띠아노는 서울을 떠나 경기도 이천(利川) 고을에서 숨어있었는데 어떤 냉담교우가 포청에 밀고하여 체포되었다. 포청으로 압송된 후 포졸들에게 주뢰를 틀리고 고문을 당하였음에도 그의 신앙심은 확고부동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영광스럽게 국사범(國事犯)으로 다루어져 의금부(義禁府)의 옥으로 이송되기에 이르렀다.
의금부에서 문초를 세번 당하면서 그는 곤장을 수없이 맞았으며, 마침내는 참수의 선고를 받게 되었다. 형장에 가기 위하여 수레에 오르면서 세바스띠아노는 하인으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체포되어 옥중에 있는 아내에게『우리는 같은 날 죽기로 언약을 했었는데 그렇게 되질 않으니 적어도 같은 일을 위하여 죽도록 하자』는 말을 전하였다.
그러한 다음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 당하였으니, 이때 나이는 6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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