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지금도 크게 넉넉한 편은 못되지만 20~30년 전에는 꽤들 못살았나 보다. 끼니라고는 대부분 옥수수 등 잡곡이고, 죽으로 끼니를 대신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생일날만 되면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구하셨는지 내 밥만을 쌀밥으로 마련해 주셨기에 철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그러기에 생일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다.
교황님께서 오시기로 되었다는 말씀을 추기경님으로부터 듣고는 생일날을 기다리는 어린 마음처럼 고운 기다림을 키워왔었다. 어쩌면 이번에 교황님을 뵙는 것이 내 생애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간절함과 오랫동안 기도해온 103위 목자의 시성식을 함께 거행한다니 진정 가슴 졸이게 하는 기다림이 아닐 수 없었다.
각 계에서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신부님의 명을 받고 성체 분배자 교육을 받아 성체 분배권을 수여 받았다. 늦게 시작한 대학원의 수업시간과『성체 분배권자 교육에 하루라도 빠지면 분배권을 주지 않겠다』는 안상인 신부님의 위협적(?)인 말씀 속에 많은 갈등은 겪었지만『나를 따르려는 자는 모든 것을 버려라』는 성서 말씀대로 대학원은 한 학기를 더할 각오로 열심히 성체 분배자 교육에 임했다.
오실 교황님의 모습을 그리며 성체의 신비, 성체의 존귀함을 익혀갔다.
드디어 5월 3일 공교롭게도 목요일이라 꽉 찬 수업시간에 밀려오시는 모습을 직접 뵙지 못하고 마음만 졸였다. 저녁시간 TV뉴스 속에서 교황님을 접한 나는 가슴 설레이는 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 거실 벽의 대형사진을 통해 익혀온 교황님의 모습이 또 다른 면으로 가슴속 깊이까지 확대되어 왔다.
한마디로 사랑 그 자체였다. 그림자라고는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는 표정, 주일학교 교사를 지도하며 항상 말하던「無財七施」중 첫번째로 꼽는「顔施」를 바로 교황님의 龍顔에서 보았을 때, 『바로 저것이다』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저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었으리라. 온 세계의 군중이 교황님의 표정에 감동하듯 이스라엘의 구름처럼 밀려든 청중들도 바로 예수님의「사랑의 미소」를 뵙고 싶은 때문이리라. 「心心相印」이라 했다. 「以心傳心」이라 했다. 무슨 單語가 꼭 필요했으랴. 오랫동안 가난한 자 편에서, 병든 자 편에서 사랑만을 배달해 오신 교황님의 생활이 저 온화한 표정을 지니게 했으리라.
5월 6일 여의도행사를 기다리는 3일간은 3년보다 더 긴듯했다. 저 모습을 직접 뵈리라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10지구의 성체 분배의 책임을 맡은 나는 작은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너무 멀어 표정을 읽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11ㆍ12ㆍ13ㆍ14 지구, 지방에서, 해외에서 밤을 새며, 끼니를 거르면서 오셔서 나의 한 자리가 시성식을 빛내고 한국교회를 빛낸다는 신심으로 조금도 흔들림 없는 진지한 모습에 위로를 받으며 참아야 했다.
성체 분배를 송구스러움과 감사 속에 끝내고 뒷좌석으로 온 나는 성체분배자의 장백의 덕분으로 나가시는 길 가까이에서 교황님의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그 감동은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나는 뜨겁게 기도했다. 『주님, 이 죄인에게도 조금만이라도 좋으니 부당하오나 저 모습을 지닐 수 있도록 은총주소서. 온 마음 다하여 갈고 닦아 저 모습을 닮아가도록 힘을 주소서』더 이을 단어를 못 찾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기도했다.
너무 지나친 욕심이리라. 그러나 못되더라도 노력 해야겠다. 어떤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주여 당신의 제자 요한 바오로 2세가 더 많은 사랑의 배달부가 되도록 영육 간의 건강을 지켜주소서』
주머니에 든 묵주의 나무십자가에 끈끈한, 간절한 땀의 기도가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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