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이야기(창세기 6ㆍ5~9ㆍ29)
홍수 이야기는 고대 근동지역의 여러 종속들 사이에 전해져왔다. 그중 메소포타미아에 전승되어 온 길가메쉬(Gilgamesh) 서사시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는 노아홍수 설화와 매우 비슷한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 두 홍수 이야기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일반적인 홍수 전설은 다신론적인 것으로서 신들이 이유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홍수를 일으킨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성서는 홍수의 위협을 하느님의 심판과 은총이라는 깊은 신학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창세기의 홍수설화는 야훼계와 제관계전승이 합쳐진 것으로서 이 두 전승은 각기 다른 신학적 관점에서 몇 가지 상이한 기술을 하고 있다. 야훼계 전승에서는 방주에 들어간 동물의 숫자가 7쌍이고 홍수는 40일간이며 홍수 후 비둘기를 3번 날려 보낸 것으로 기술한다. 그런데 제관계 전승에서는 동물이 한쌍씩이고 홍수는 1백50일, 또는 1년간이고 홍수 후 까마귀를 한번 날려 보낸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이 대홍수의 기간에 대한 의문이나, 노아의 방주에서 모든 생물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지냈는지 등에 관한 질문은 불필요하다. 성서의 이 홍수이야기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의 실재와 하느님의 구원하심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아의 하느님과의 계약(9ㆍ1~17)
대홍수 이후의 새 시대가 하느님의 창조적 축복(9ㆍ7)으로 새롭게 열린다. 인간은 다시 지상의 통치자로서 사명을 받고 짐승들의 생명까지 좌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육식이 허용되었으나 짐승의 피를 먹는 것은 금지되었다. 동물의 생명이라 할지라도 생명에 대한 경의심은 창조주께 대한 경의심과 같은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의 피를 먹지 않음은 하느님께만 보류된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자기권한의 한계를 지킨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권한에 대한 두번째 제한은 인간이 다른 인간의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제 피도 흘리게 되리라』(9ㆍ6)는 말은 살인자에게 사형을 집행할 수 있으나 무절제한 복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계명이다. 피의 복수는 살인자 장본인한테만 적용되는 것이지 그 가족에게까지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아에게 주신 계명과 창조주의 축복(9ㆍ1~7)에 이어서 노아와 하느님과의 계약이 뒤따른다. 계약은 원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상호간의 약속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하느님과의 계약은 쌍방의 합의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하느님 편에서 인간에게 주는 일방적인 약속이다.
구원 질서의 절정인 이 계약은 인간에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로서 계약의 발의(Initiative)가 항상 하느님께 있다. 하느님의 영원한 약속인 이 계약의 내용은 ①모든 것이 멸종되더라도 노아와 그 가솔은 살아남으리라는 것(6ㆍ18)과 ②인류가 다시는 홍수로 멸망되는 일이 없으리라는 보장(9ㆍ9~10)이며, ③하느님이 항상 계약을 기억하시겠다는 약속(9ㆍ12~17)이다. 이 계약의 표지로서 무지개가 등장된다. 고대근동인들은 무지개를 태풍신이 전쟁 후에 하늘에 걸어놓은 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서는 이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무지개를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자애로운 계약의 표지로 해석했다.
노아의 저주와 축복(9ㆍ18~29)
의롭고 경건한 인물로 소개되었던 노아가 술에 만취해서 벗은 채로 누워있었다는 기술은 예기치 않은 노아의 실수를 말하려 한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가나안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 투쟁했던 사람들의 운명과 그 역사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말하려 한다. 노아의 세 아들인 셈과 함께 야벳은 노아의 저주와 축복으로 그 운명이 고정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노아의 아들 중함은 부친의 실수를 웃음거리고 만들고 부친에 대한 경의심을 저버렸다. 이에 비해 다른 두 형제는 부친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온 지혜로운 행위로써 부친의 실수를 덮어 주었다.
그들의 행위에 대한 부친의 축복과 저주는 그들의 장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을 지닌 심판이었다. 가나안의 조상인 함은 저주를, 블레셋인의 조상으로 간주되는 야벳과 히브리인의 조상인 셈은 축복을 받았다. 이로써 성서는 가나안 원주민이 그들 보다 훨씬 뒤늦게 가나안으로 이주해 온 이스라엘인의 노예가 된데 대한 구세사적인 이유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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