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어느 개신교 여신도는 여의도에서 시성식이 있던 그날 아침, 텔레비전 중계방송을 잠깐만 보다가 교회로 나갈 생각이었는데-그날은 주일이었으니까- 그만 텔레비전 앞을 떠날 수가 없어서 교회 나가는 걸 포기하고 행사가 끝나도록 텔레비전을 지켜보았노라고 했다.
그녀의 말인즉 교황님의 표정이 어찌나 인자롭던지 그 표정만 보고 있어도 은혜를 받는듯 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이미 국민학교 시절에 실명, 아내와 자식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못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모습마저도 이제는 기억 속에서 확연함을 덜해가고 있다.
그러한 나 인지라 그분을 비록 지척에서 뵈었고, 시성식 미사중 그분에게서 영성체까지 하였다한들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는 그분의 이른바「은은한 미소」를 내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었음은 실로 유감된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러나 나는 짐작은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강한 신뢰와 인간애 때문에 죽어야만 했던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로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가장 완벽하게 닮아가려는 교황님의 내심은 표정과 몸짓 하나 하나에서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마련이었으리라고 하는 사실을 말이다.
그분이 우리나라에 도착해서 떠나기까지의 4박5일간이 나에게는 마치 예수님생애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2천년전 유대인들은 우리가 교황님 오시기를 기다린 그 몇 갑절이상 「메시아」오심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을 만나자 그들은 주저함 없이 그분을 그들의 왕으로 모시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향해 가셨다.
교황님은 4박5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떠나가셨다. 마치 2천년전「올리브」산에서 예수님을 떠나보내듯 우리도 김포 공항에서 교황님을 떠나보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때의「갈릴레아」사람들처럼 우리도 빈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것인가 하는데 있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그 분의 원의를 더듬어 찾듯이 4박5일의 방한 기간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민족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 분의 메시지를 추려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드러난 요지를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구체화시켜 나갈 때 교황 방한의 의의는 진정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이제 1백3위 성인을 탄생시킨 2백년 전통의 성숙한 교회로서 세계에 부상했다. 그러나 3백주년4백주년에 있어야할 또 다른 시성식의 준비는 지금 우리의 손으로 시작하여야만 한다. 이 시대에 가리워지고 있는 진리를 위해 몸 바치는 진리의 성인, 가난하고 약한 이들 편에 서서 이들과 함께하는 사랑의 성인,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심어가는 평화의 성인을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배출하여야만 한다.
일찌기 어느 성인치고 세속의 눈에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 성인은 없었다. 그러면 과연 누가 이 어리석음의 길을 또 다시 가려 할 것인가?
물론 성인 탄생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방한시에 교황님이 보여준 언행을 우리 생활 속에 옮겨심고 이를 키워갈 때 새로운 성인 탄생의 기운은 조성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한국에 머무시는 동안『저분이 혹시 한국인이 되고 싶어 안달이나 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깊은 친밀감을 보여주었던 우리의 벗, 교황님의 만수무강을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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