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황님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 중의 하나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 5개월여 동안 적어도 만여번 이상을 만나 뵈었으니 말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냐 하면 비릿내 나는 이 지역을 우여곡절 끝에 교황님께서 찾아주시기로 결정한 작년 12월 이후부터 나는 학교일을 잠시 떠나 교황 부산방문행사위원회 사무국에서 일을 전담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내 생활은 교황님이 중심이었고, 그분 모습이 담긴 1만여매의 초청장을 여럿이 모여서 접던 마지막 무렵에는 거리에서도 어디에서도 그분의 시선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쌓인 피곤도 한번의 만남으로 상쇄되고 말았다. 이건 나뿐이 아니라 행사준비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수고한 모든 분들의 실정일 것이다.
사실 부산서의 만남은 다른 지역에서의 만남에 비해 매스컴에서 제대로 소개하지 아니했던 것 같다. 하지만 땀내 나는 작업복 차림의, 덜 세련된 사람들 10여만명이 모여 시골먹석한 가운데, 약간 꾸부정한 모습으로 따뜻한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고 오셔서 근로자를 안아주시던 그분의 포옹은 정말 감동 어린 정경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목자로서의 일상사인데, 이 모습이 정작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라! 교황님께서 근로자 농어민을 중심을 한, 신자아닌 일반인들 중심의 만남의 시간 없이 훌쩍 떠나 버리셨더라면 길 잃은 양떼를 찾아 나선다는 복음 중의 목자 이야기와 그리 부합했겠는가를! 부산 행사 장소는 확 트인 바다 쪽이어서 구름 끼인 날씨에 바람도 세찼고, 또 오후 6시 무렵의 시각은 만나서 얘기 나누고 정감이 오가기에는 어줍잖 시간이었다. 즉 만남의 감흥이 가장 적게 일어날 불리한 시간, 감동을 덜 느낀 일반인 중심의 모임이었다. 그런 중에 오셔서 그분은 꽉 찬 음성으로 뜨겁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 만남의 의미는 더욱 소중한 것이었다.
부산 행사가 끝나는 대로 밤 열차를 타고 달려가 이튿날 새벽 여의도에 도착, 정말 송구스럽게도 제단 앞좌석에서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다. 시성식이 끝나고 장애자들 틈으로 들어가시는 그 분의 옷자락을 나는 가벼이라도 스칠 수 있었다. 환희와 용솟음이 크게 일었고 이것이 바로 은총이구나 싶었다.
여의도의 행사는 과연 질서정연 했다. 돌아오는 찻간에서 서울서의 만남과 부산서의 교황님만남을 비교해 보았다.
굳이 비교할 수는 없지만 땀내 나는 근로자 틈에서의 만남의 체험도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우리들은 이제부터 그분이 오신 의미를 말씀들을, 또 맞이하기 위해 내세웠던 표어들을 정말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교황님의 열기가 좀 가셔진 그 후 어느 날 B대학 교수식당에서 신자아닌 교수들의 소감을 듣는 중에 두마디가 인상적이어서 여기 옮겨본다. 그 하나는 교황님이 여러 사람들을 한 사람 만나듯 진실히 대하는 그 표정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말, 그 모습이 어찌 고도의 제스츄어겠느냐? 생활과 인간애에서 우러나온 진실이 아닐 수 있느냐 하는 말과, 다른 하나는 흔히 도덕적인 발언을 하는 지도자는 언행이 일치하지 않아 괴리감을 주는 수가 자주 있는데 이국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그 음성에서도 의미가 진하게 가슴에 전해지더라는 것, 말씀들의 내용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압축되어 담겨져 있더라는 것.
나는 이제 학교의 내방으로 돌아와 교황님이 주신 메달을 앞에 두고 그 분을 만났던 의미와 감흥을 잔잔히 되새기고 있다.
우리 신앙인 모두에게는 꼭 쇄신의 기회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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