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읍니다. 등경위에 얹어둡니다. 그래야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줄 수 있지 않겠읍니까! 여러분도 이와 같이 사람들 앞에서 여러분의 빛을 비추어 그들이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시오』(마태5·15~16) 예수그리스도는 즐겨 사용한 비유의 말씀에서「자신의 빛」을 비추라고 가르치셨다. 「이 땅에 빛을」.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의 모또 또한 한국교회가 빛으로 살 것을 다짐하는 구체적인 지표라 말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2백주년과 더불어 순교성인들의 순교자적인 삶을 증거 하는 삶으로 살아야 할 싯점에 섰다. 본보는 그리스도의 빛을 삶으로 비추어야 할 사명 앞에 직면한 오늘, 등경위에 얹힌 작은 등불처럼 조용히 주위를 밝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소박하게 그리고 꾸준히 자기의 주변에 그리스도의 빛을 심는 작은 등불들의 삶이 우리 모두의 삶으로 승화되기를 기원하면서.
「난지도」의 여름은 유난하다. 해빙기와 더불어 이어지는 공기층의 오염이 그만큼 길고 또 지독하기 때문이다. 이웃이 외면하고 주위가 고개를 젓는「난지도」의 여름이지만 난지도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겐 계절을 따져 싫고 좋음을 가릴만한 여유가 도무지 없다. 그것은 행복한 사치일 뿐이다. 난지도는 이들에게 생명의 젖줄, 생활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조정희(율리아ㆍ34歲)씨.
난지도주민들에게 「이모」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그녀는 분명 난지도에 적을 둔 난지도 사람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난지도의 주민이 됐다면 그녀는 스스로 난지도의 주민이 되기를 희망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4백 82번지. 흔히 쓰레기 하치장으로 불리는 난지도의「아기들의 집」은 그녀가 지난해 가꾸어온 소중한 삶의 현장. 30평 대지위에 지어진 8평짜리 판자집 두칸방은 바로 조정희씨와 그의 동료 봉사자들이 천사 같은 어린이들과 사랑을 키워가는 사랑의 터전이다.
꼭두새벽 일터로 달려가는 난지도 공동체가 이들에게 맡기는 아기들은 현재 40여명. 모두 2살ㆍ4살 미만인 어린 아기들은 이때부터 그녀의 품속에서 이모의 정을 느끼며 허전한 사랑의 몫을 채운다.
밥을 먹이고 씻기고 기저귀 빨고, 또 간식 준비하고 재우고 함께 놀아주고 잠시도 손을 놓을 수 없을 만큼 분주한 시간들이지만 일터에서 돌아온 부모들이 꼬마들을 찾아가는 저녁 무렵이면 그녀는 그럴 수 없이 아쉬운 마음으로 이들과 헤어지곤 한다.
그녀가 난지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82년 말. 지독한 겨울바람이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사정없이 휩쓸고 있던 때었다. 명동주임 김수창 신부의 권고로 우연히 난지도를 찾은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난지도 사람이 될 것을 결심했다. 그만 남은 막연히 자신의 길을 찾던 그녀에게는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서울 가톨릭 사회복지회와 명동대성당의 지원 속에 마련된「아기들의 집」은 83년 2월 7일 문을 열었고 폐품 속에서 고른 방문과 대문, 책상들을 구비한 8평짜리 두칸방은 그럴 수 없이 훌륭했다.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지켜보던 주민들은 불과 한달도 못돼 그녀를「이모」라고 불렀다. 하루 종일 쓰레기더미에서 온갖 쓰레기와 더불어 보내야 했던 자녀들이 시원시원하고 밝은 성품의 그녀의 품에서 깨끗하게 뛰어노는 모습 앞에 더 이상 의심의 눈초리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그녀가 수십명의 어린이를 돌보아야 하는 일은 수월할 수가 없었지만 살기 위해 무섭게 몸부림치는 주민들의 모습을 대할 때 그녀는 결코『피곤할 수가 없었고 피곤을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또『진지하고 눈물겹기 조차한 그들의 삶 앞에서 피곤을 얘기한다는 것은 오히려 죄악 같았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한사코 싫다는 그녀를 설득, 어렵게 만났을 때 그녀는 이 만남의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설치는 것」은 도무지 싫지만『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단서 앞에 한없이 약해지는 그녀의 자세, 마음에서 왜 그녀가 난지도의 주민으로 살고 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소중하게 키워갈 수 있는 방도가 없는 난지도의 현실을 안타까와하는 그녀는 특히「중간업자」들 때문에 크게 줄어드는 이웃의 소득에도 가슴 아파했다. 『어린이들은 물론 주민들이 아플 때 가장 괴롭습니다. 의료시설은 물론 외부병원에서조차 의보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병은 치명적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독하게 오염된 공기 탓인지 아기들이 일년내내 감기를 앓는 것처럼 기침과 미열이 그치지 않는다』고 염려하는 그녀는 실제로 최근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아픈 아기가 너무나 쉽게 숨져가는 것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오열을 터뜨려야 했다.
77년 자기 발로 성당을 찾아가 신자가 된 조정희씨는 바쁜 직장생활 틈틈이 명동성당 청년단체 일원으로 활약, 봉사에 대한 자신의 신념과 사명을 확인했으며 난지도라는 공동체와 만남으로써 그녀가 원했던 신앙인의 길을 찾게 됐다.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했던 지난해 성탄절 미사가 아직도 주민들의 마음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고 밝힌 그녀는『명동본당처럼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구체적인 사랑을 지속적으로 나누어 가졌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꿈을 펴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명동본당은 난지도「아기들의 집」을 마련하는 일에서부터 매월 봉사자들의 생활비「아기들의 집」운영비 등을 도맡고 있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쪼개 성경공부에 열중, 그 말씀을 바탕으로 신앙인의 삶을 가꾸어 가는 그녀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하나의 작은 등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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