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들과의 만남」이라는 시간을 위해서, 교황님을 뵈옵기 위해서 서강대학교를 향했다. 식장 안에는 일흔이 넘은 원로들로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수백여명이 그분이 도착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 모임부터 시작하면 거진 네시간 이상을 기다린 셈이었다. 사실 기다림이란 언제나 지루하고 답답한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불평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그분이 도착하시자 우리는 모두 일어서서 목청껏『교황만세』를 불렀다. 일생에 내가 그분을 가장 가까이서 본 순간이었다. 그분은 연일 대구, 부산으로 강행군을 하시다가 마악 도착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의 그 따뜻하고 자애스러운 미소 속에 피로함을 감추고 계셨다. 항상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그분의 미소가 감도는 모습을 직접 뵈옵고서 나는 짧은 순간이나마 인간이 아닌 신성한 존재의 한분과 대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내 굳은 마음이 그런 감동을 받을 만큼 그분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미소는 평화로움과 자애스러움 바로 그 자체였다. 때문에 그분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동안의 기다림에 지루했던 생각들을 일시에 떨쳐버릴 수 있었다. 여의도 광장의 시성식장에 갈 때에도 나는 그「비표」라는 것 때문에 발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신분증을 꺼내 보이고 확인을 받고서야 지정석까지 가는 짜증스러움을 겪어야 했다. 철저한 경호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수차례의 검문에 시달리다 보니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교황님께서 단상에 오르셔서 그분 특유의 제스처로 양팔을 높게 쳐들고 군중들에게 미소를 띄우며 인사를 하실 때, 그리고 수십만명의 형제들이 하나같이『비바 빠빠』를 외칠 때 나는 내 속에 남아있던 씁쓰레한 생각들을 말끔히 지워버릴 수가 있었다.
그분의 역사적인 한국 방문은 여늬 국가원수들처럼 미사일과 대포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믿음과 사랑을 가져다 주었음을 그분이 가시고, 그분의 방한으로 인한 임기가 사라진 지금에서야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얼굴의 표정은 인위적으로도 약간은 위장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분의 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따뜻함과 미소는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숨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벗이 있어 먼데로 찾아 가면 그야말로 큰 기쁨이 아닌가?…』
그분의 우리말로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아무런 가식도 편견도 갖지 않고 수만리 먼 한국 땅에 찾아오셔서 가는 곳마다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미소를 지으시던 그 모습은 아직도 내 뇌리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 자애로운 미소 속에 많은 상처들은 아물게 되었고 우리에게도 대결과 전쟁으로서가 아니라 상호 신뢰와 형제애로서 조국이 통일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 자신에게 관계된 일인데 참으로 오랫만에 그분의 오심으로 인해서 내 영성생활에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는 점이다. 그 분의 따스한 미소는 차갑게 굳어버린 내 영혼을 부드럽게 녹여주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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