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과 응답(창세기12ㆍ1~9)
구원의 역사는 기원전 1850년경、아브라함이 부름 받은 사건에서 시작된다.
『그때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그 땅으로 가거라』(12ㆍ1).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이 한 말씀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의 고향땅 비옥한 우르(Ur)를 버리고 평생 나그네 길을 떠났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말씀이 있으되、또는 이르시되』라고 매우 단순한 양상으로 표현된다. 부르심은 이처럼 우리들의 평범한 생활 중에 가장 은밀하고 조용한 가운데 이루어진다. 여기서 하느님이 왜 아브라함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부르심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발의(Initiative)에 근원을 둔 신비의 영역인 때문이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부르심의 조건은 인간이 의지하고 있는 생활의 안정과 여건에서 떠나라는 말씀이다. 이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특히 고향과 씨족 집단에 의존하고 있던 고대 근동인에게 있어 대단한 결단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디로、어떻게 가야할지도 모르면서 묵묵히 순종하였다. 아브라함의 이 태도는 최초의 인간이 하느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며 자기 야심대로 미래를 개척하려 한것과 대조가 된다.
부르심에 응답한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은 새로운 땅、위대한 민족、축복 그 자체가 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이 하느님의 약속은 성조사와 이스라엘 민족사를 연결시켜주는 주제이다. 세상 사람들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축복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뜻이다. 이처럼 축복은 자신을 위한 것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다.
아브라함과의 계약(15ㆍ1~21)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두절된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계약으로 회복된다. 여기서 기술한 계약체결의 방법은 옛 계약예식에 준한 것이다. 고대 근동인들은 계약을 맺을 때 동물을 희생하여 저며 놓고 그 피 흐르는 사이로 체결자들이 지나갔다. 이것은 만일 그들 중 누구든 그 계약을 깨뜨릴 경우에는 그 희생제물과 비슷한 운명이 되리라는 상징이었다. 아브라함과의 계약은 모세의 중재로 이스라엘 민족과 시나이산에서 성대하게 갱신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이스라엘인 모든 믿는 자들과 영원한 계약으로 완성된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큰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15ㆍ1). 여기서 상급이란 땅과 후손이다. 성조사를 통해 계속 메아리치는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의미심장한 신앙의 위기를 반복해주기도 한다.
약속의 땅은 가나안인들이 소유한 채 남아있는 흉년으로 그 땅을 떠나 에집트에 이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약속의 성취가 지연됨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신앙인의 모범이 되었다. 여기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시청각 자료로 쓰면서까지 약속을 확인시켜 주는 자상한 분、인간에게 매우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으로 소개된다.
계약의 표지인 할례(17ㆍ1~27)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은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느님이 되리라』(17ㆍ7)는 말씀으로 집약된다. 이 계약의 말씀은 『나는 너희 가운데 살며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시나이 계약과 이어진다. 그리고 이 계약의 표지로서 할손례가 소개된다.
할례는 고대 근동지역에서 사춘기、또는 결혼과 관련된 성인예식이었다.
이러한 원시사회의 풍습이 하느님께 속한 백성의 표지로 승화되었다. 따라서 할례는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의 일생이 전부 하느님께 바쳐졌다는 신앙고백의 행위였다.
또한 아브라함이 노예들까지 할례에서 제외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비 유대인들도 하느님의 구원에 포함됨을뜻한다. 이 할례는 계약의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계약의 백성에 속한다는 외적인 표지일 뿐이다.
할례는 실생활과 무관하게 구원을 보증해 주는 부적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오해를 비판하고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마음의 할례、즉 마음의 진실된 회개를 강조했다. 하느님과의 계약 체결의 결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표지인 할례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바뀐 점이다. 계약으로써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은 그들의 하느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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