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앞 양동(陽洞)-.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명에서 사라진지 수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양동이라고 불러야만 쉽게 통하는 곳이 양동이다. 도시 슬럼가의 대명사처럼 오욕의 거리로 불려지는 양동은 재개발의 기운아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되고 있으나 그 모습이 화려해 질수록 슬럼가는 상대적으로 더욱 비참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곳 양동의 외진 곳은 오래전부터 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소리 없이 봉사하면서 불우한 이웃에게 빛을 전하기 위한 활동 무대로 삼아왔다.
김연수씨(31ㆍ아가타). 굳이 봉사자임을 거부하고 자신은 양동의 한 생활인임을 강조한다.
주민들로부터 「선생님」으로 불리는 그녀는 81년부터 이곳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오다가 지난해 8월 31일 아예 거주지를 양동으로 옮겨 양동사람이 됐다.
서울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아 6개월 기한부로 이곳에 정착한 그녀는 이미 그 기한을 넘기고 일년이 가까워 오고 있으나 차마 떠나지를 못하고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3백46번지 8통8반 1층1호. 그녀가 살고 있는 양동은 수년전 이렇게 개명됐으나 양동인의 생활상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화려한 빌딩群 속에서 언제 가는 생활의 터전을 옮겨가야 한다는 부담감만 가중될 뿐이다.
이곳에 그녀가 정착한 것은 지난해 8월. 또 다른 봉사자 박다니엘라씨와 함께 자취하면서 방을 하나 더 빌어 야학을 개설하고、장서를 마련하여 도서실을 꾸미는 한편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웃들의 손발이 되고 있다.
양동에서 생활터전을 잡지 못하고 살고 있는 대부분의 거주자는 걸인 창녀 맹인 및 각종 장애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그녀가 이곳에서 하는 일은 구걸나간 부모들의 자녀들을 돌보아주는 일에서부터 연고자 없는 응급환자의 입원수속과 남아있는 가족들의 빨래와 취사、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상담 등 밤낮을 가리지 않고 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증이 없는 이들에게는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주고 맹인이나 환자는 휠체어로 성당에 데려다주며 방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이들에게는 슬그머니 방세를 밀어 넣어 주기도 한다. 이러한 그녀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방학을 이용하여 신학생들이 교리반을 개설하고 15명의 서울여대 이화여대생들이 야간학교를、메디칼센터 가톨릭신자회에서는 매주 토요일 무료진료를 담당해주고 있다.
『수년전부터 이곳에 관심을 가져오면서 이곳 주민들에게 애착을 느껴 함께 생활하기로 결심했다』는 그녀는 『이곳에서 거듭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양동의 주택은 대부분 5층 이상의 아파트식 건물이지만 각 방의 크기는 한평 남짓하고 한 건물 안에 수십가구가 살고 있어 닭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게다가 각 방의 문이라고는 출입구 하나와 창문 하나밖에 없고 방세는 2천원씩 일세(日貰)로 받고 있다. 이러한 생활환경이 말해주듯 수혜자는 많은데다 소문나게 도와주면『누구는 주고、누구는 주지 않느냐』고 항의를 하는데다 의타심 때문에 도움을 주는데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그녀는 『장애자를 돕는 일은 일시적인 경제적인 지원보다는 자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장애자가 아닌 것에 새삼 감사하고 있다』는 그녀는 『성당시설을 비롯 전반적으로 교회가 장애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줄 것』을 희망했다.
『성꼴룸바노회 인향성(까롤로)신부의 영성지도와 후원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고 밝힌 그녀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를 비롯 압구정동본당ㆍ서울꾸르실료 남성51차ㆍ겟세마니형제회 등에서 도움을 받고 있으며 도티기념병원 강남시립병원 메디칼센터 성바오로병원 성분도병원 성빈센트병원 등에서 환자 무료진료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곳 양동은 사랑의 선교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복자수녀회 성체회 성베네딕또회 등 각 수도회에서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고 있어 이곳 주민들은 결코 외롭지만은 아니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여러 수도회와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이미 잘 닦여진 길에 와서 사는 것뿐』일을 거듭 강조하는 그녀의 삶은 암흑 속에 빛을 비추는 하나의 작은 촛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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