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중에는 母女가 함께 순교하여 영광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다섯 가족이나 있었는데 그중에서 모녀가 함께 체포되어 거의 같은 날에 獄死한 경우는 이까타리나와 그녀의 딸 조(趙)막달레나 뿐이었다. 母女殉敎聖人들은 모두 己亥敎難 때에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가족적인 敎理傳習으로 성교의 진리를 이해하고 이를 신봉하였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이제 우리는 이까타리나 모녀에 대한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사실을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聖女 이까타리나는 교리에 별로 밝지 못한 신자부모에게서 1783년(正祖7년)에 태어나 시골에서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깊이 신봉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 후 장성해 가면서 그녀는 점점 이를 깊이 이해하게 되고 계명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외교인과 결혼한 까닭에 교리를 좀 더 철저히 배울 수가 없었고 신자의 본분도 제대로 이행할 수가 없었다. 이에 까타리나는 보다 열심히 남편에게 권고를 하고 모범을 보여 마침내는 남편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남편이 대세를 받고 행복한 죽음에 이를 수 있도록 하였다.
남편이 죽은 후 외교인으로 남아있는 시집식구들은 그녀가 행하는 어떠한 천주교의 규칙도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엄금하였다. 까타리나는 이러한 환경에서 도저히 성교의 도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자녀들을 데리고 친정어머니에게로 돌아와 그들의 신앙생활을 좀더 자유롭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자녀들 중에서 특히 맏딸인 조막달레나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워 천주와 이웃을 사랑하는데 빠른 진보를 이룩하였으며 점점 童貞을 지키려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까타리나는 딸의 마음을 이해하였으나 외교인 친척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하여 딸로 하여금 서울에 있는 어떤 교우 집안의 하인으로 들어가 생활하도록 하였다.
딸이 설흔 살이 지나 다시 집으로 내려왔으나 전보다 박해의 위험이 급박하여 지고 외교인들도 그들을 더욱 못살게 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까타리나는 딸을 데리고 서울로 가서 살기로 하였다. 이때가 1838년(憲宗4년)으로 대박해가 일어나기 바로 전이었다. 앵베르 주교는 그들이 서울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몇몇 회장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거처할 곳을 구해 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안심하고 지낸 것은 극히 잠깐이었다. 다음해 기해교난의 박해가 시작되면서 서울에서는 천주교인들을 어느 때보다도 심하게 탄압하였기 때문이다.
서울에 와서 까타리나 모녀가 생활한 집은 조발바라와 그녀의 두 딸인 李榮德 막달레나、李仁德 마리아가 생활하고 있던 조그마한 집이었다. 발바라는 완고한 외교인이었던 남편을 피하여 딸들과 함께 집을 뛰쳐나온 후、 앵베르 주교의 허락을 얻어 그 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던 터였다. 이에 다섯 명의 진실한 여교우들은 서로 용기를 북돋아주고 의로운 덕을 쌓아가면서 박해를 받으면 이를 참아내자고 권면하였다. 박해가 시작되고 포졸들이 주교를 찾기 위하여 돌아다닐 때、 그들은 함께 모여 「주교님이 잡히시면 우리도 자수 합시다」라고 논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목자들의 뒤를 따라갈 것을 약속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그들의 생활에서 볼 때 여교우들이 종교를 지키고 그 신앙을 생활화하기 위하여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려 하였던 일면을 알 수가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공동체 속에서 신심을 더욱 두텁게 하고 순교의 길이 그들의 목적임을 인식하였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다섯 여교우들은 자수의 기회를 갖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포졸들이 그 집에 들이닥쳐 모두를 체포하였던 까닭이었다. 이때 까타리나의 나이는 57세、 그의 딸 막달레나는 33세의 童貞女였다. 그들 모녀는 처음에는 포장대리에게、 다음에는 포장에게 문초를 당하였지만、그들이 받는 어떠한 형벌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굳게 참아내었다.
3개월여 동안 옥에 갇혀있으면서 까타리나는 오직 주님의 영광을 뒤따르고자 하는 마음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계속적인 형벌로 몸이 쇠약하게 되었고、 당시 옥중에 만연하던 열병에도 걸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1839년 9월에 獄死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그녀가 바라던 天上의 榮光된 길이었다. 며칠 후 딸 막달레나도 그녀의 뒤를 따르게 되었으며、 이에 두 모녀는 하늘에서 한 자리에 있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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