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의 고통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던데!』김근영씨(안또니오). 그는 지독한 병고에 시달렸고 아직도 시달리는 병자의 몸으로 보다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봉헌한 집념의 사람이다. 서울 강동구 마천동 동녘 끝변에 자리한「애덕의 집」은 바로 병꾸러기 김근영씨를 통해 입증된 위대한 사랑의 표본、사랑의 집합체다.
「애덕의 집」은 중풍환자 할아버지ㆍ장애자ㆍ정신질환자ㆍ정박아ㆍ만성내과 질환자 등 오갈데 없는 행려환자들이 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룬 삶의 보금자리. 현재 40여 명인 이들 환자들은 각종 질병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서도 차가운 현실과 냉정한 이웃들이 만들어 주었던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하나 둘씩 녹여가는 인간다운 삶을 만끽하고 있다.
결코 어느 곳에서도 차지할 수 없었던 인간의 정이 애덕의 집 곳곳에서는 넘쳐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애덕의 집이 불구 행려환자들의 삶의 터전으로 출범한 것은 82년 3월 1일. 애덕의 집은 폐혈전증ㆍ신부전증ㆍ간경화ㆍ간염 등등 7가지나 되는 질병이 엄습、무섭고 고독한 병마와의 싸움에서 겨우 일어선 김근영씨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 감격의 결실이었다.
무의무탁한 불구 환자들이 퇴원 후에도 갈 곳이 없어 다시 행려환자로 병을 얻고 죽어가는 충격적인 과정은 그가 환자들과 함께 살 것을 결심케 하는 결정적인 요인을 만들어 주었다. 퇴원과 더불어 그는 둔촌동아파트、자신의 거주지에서 환자들을 데려다 무조건 살기 시작했다.
장소ㆍ재정적인 문제 등 그 어떤 문제도 행려환자들의 절박한 상황보다는 결코 중요할 수가 없었다.
환자들은 늘어났고 비좁은 그의 집은 완전 포화상태、새 보금자리는 필연적으로 요구됐다. 결국 둔촌본당(주임ㆍ임상무 신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사경을 헤매던 한 젊은이의 집념은 작은 결실을 맺기에 이르렀다.
둔촌동 야산언덕에 자리했던 사랑의 집은 겨우 버티고 서 있을 정도의 오두막에 불과한 삭월셋방이었지만 이 집은 불과 1년 만에 40여 명의 환자들이 등을 맞대고 새 삶의 여정을 함께 떠나는 사랑의 터전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88년 한국올림픽 선수촌부지가 바로 애덕의 집이 있는 현장일원으로 확정되면서 또 다시 힘겨운 싸움은 시작됐다. 새집마련을 위한 처절한 노력은 힘겨움 속에서도 이웃의 격려와 지원 속에 이어져 갔으나 김근영씨의 건강을 잡아둘 수는 없었다.
본당과 수녀회、그리고 각 기관단체를 순회하면서 도움을 호소하고 뛰어다니던 그는 새집을 준비하는 동안 세번씩이나 입원、죽을 고비를 넘겼다. 『다시 쓰러지면 죽는다』는 의사의 경고도 무시한 채 뛰었던 그는 세번씩이나 위기를 넘기면서도 무서운 정신력으로 되살아나곤 했다.
의사도 놀란 그의 정신력과 의지는 병마와의 싸움을 항상 승리로 이끌게 했고 결국 사랑의 집은 마련될 수 있었다.
마천동 성당 앞에 마련된 1백30평 규모의 새집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헤쳐가면서도 갈 곳 없는 이웃들을 돌보고자한 그의 정성과、그 정성을 높이 산 이들의 사랑으로 이룩될 수 있었다. 「애덕의 집」은 사랑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가를、또 얼마나 위대한가를 확실하게 입증해 보인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이 너무나 컸읍니다. 때론 인간적으로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럽기도 했구요』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40여명의 대가족이 극심한 배고픔의 위기를 겪지 않고 살아가는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고 고백하는 그는 『하느님께서는 필요한 만큼 반드시 주신다는 사실에 거듭 놀란다』고 강조했다.
사실 애덕의 집은 일정한 수입원이 없기 때문에 생계비를 책정해놓고 살만큼 여유가 없는 형편. 봉사자(수녀1명ㆍ평신도4명)들을 포함、모두 40명이 넘는 가족이 한달 써야하는 최저생계비는 모두 4백ㆍ5백만원에 달하지만 후원회비와 불규칙한 애긍、그리고 김근영씨가 마련해오는 특별봉헌금 등은 최저생계비를 항상 위협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두 중환자급 가족이기 때문에 약값과 수술비 등이 예고 없이 몰려들 때면 생활비는 곧바로 배로 불어나곤 하는 처지가 빈번하게 일어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장애도가 심한 환자들이 대부분이라 봉사의 손이 말할 수 없이 필요하지요. 현재의 봉사인력으로는 환자들을 모두 돌볼 수 없는 형편입니다』그동안 많은 이들의 노력 봉사로 환자들을 도와왔지만 지속적으로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나누는 봉사의 삶이 가장 필요하다는 김근영씨는 뜻있는 젊은이들의 참여를 호소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픈 몸으로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느냐고 묻더군요. 난 그들에겐 도움이 필요하고 그 도움을 누군가는 주어야하기 때문이라고 대답 합니다』김근영씨는『봉사ㆍ사랑을 멀리 놓고 보지 말고 쉽게들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능력이 있으면 나누어주고 마음이 있으면 베풀고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니겠느냐』고 소박한 사람들을 펴기도 했다.
『아직 평신도가 일하기에는 어려운 풍토인 것 같읍니다. 평신도들도 평신도가 하는 일을 전폭적으로 믿지 못하는 것 같아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외로움 속에서도 애덕의 집 가족들이 기도의 생활에 열심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은 마냥 풍요롭다』는 그는『교회가 가난의 문제에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과『불우시설의 환자들이 돈 걱정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소박하고도 엄청난(?)꿈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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