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살아 돌아 오며는 자신의 힘으로 앞으로 떳떳하게 살 수 있을 테니 얼마나 좋으냐! 이런 저런걸 생각해서 한번 부딪쳐 봐! 네 스스로 네 앞날을 위한 것이니까! 사람이란 제 살길을 찾기 위해서 한번 씩은 큰 모험을 해야 하는 거다! 알겠냐?』
왕고참은 말을 마치고 나서 기섭의 표정을 살폈다. 기섭에 대한 극진한 정으로 성심성의껏 깨우침을 베푸는 태도였다. 그동안 기섭을 몹시 구박하고 학대해 왔던 것과는 너무도 딴판인 모습이었다. 그는 기섭이 고아에다가 변변한 일가친척 하나 없이 시골에서 머슴살이로 일관하였다는 사실을 몹시 경멸하였고、또한 기섭의 정직하고 고지식한 천성을 매우 능멸하며 업신여겨 왔었다. 그런 그가 제대로 하루 앞둔 오늘 태도가 너무도 돌변해 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기섭은 왕고참의 태도가 고맙기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역시 명확한 반응을 지어낼 수가 없었다. 왕고참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 계속해서 끓어오르고、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일을 하면서 떳떳하게 산다는 것이 좋게 느껴지고 또 그렇게 살아 보고 싶은 의욕도 꿈틀거렸지만、온 마음을 쓸어서 당장 결정을 내리기에는 주저되는 바가 있었다. 막상 월남에 갔을 경우 생명의 위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당장 사령관 가족들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쉽고 허전하게 느껴지고 지레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드는 때문이었다. 또한 제대 후에 혼자 떨어져서 자신에 관한 일만을 하며 산다는 것이 재미없고 불안할 것으로도 여겨지는 까닭이었다. 그는 정말 망설여져서 절로 난감해 하는 빛을 보였다.
『야、들자. 한잔 더 들라구!』
왕고참은 막걸리잔을 들어서 기섭에게 주고、자기도 잔을 집어 들었다.
『자、같이 들자. 시원하게 쭈욱 들이키는 거야』
『예…』
왕고참은 잔을 기섭의 잔에 부딪쳐준 다음 마시는 것이었고、기섭은 더욱 황송한 몸가짐을 하면서 소리를 죽여 마셨다.
왕고참은 손으로 입술을 닦으며 정색을 한 얼굴로、
『야、바퀴. 내가 너에게 여자 하나 소개해줄까? 아가씨 말야. 별로 이쁘지는 않지만 참고 볼만은 해 어때、소개시켜줄까?』
하면서 한쪽 눈을 찡긋해보였다.
바퀴라는 것은 기섭의 양쪽 귀가 동그랗게 생겼다 해서 왕고참이 지어 붙인 기섭의 별명이었다.
기섭은 또 분명한 대답을 못하면서 거저 히죽이 웃기만 했다.
『짜식、남자답게 좋으면 좋다고 할 것이지 좋았어、소개해 주지!』
왕고참은 퍽도 인심 좋은 사람모양을 하더니、방 쪽에다 대고 소리를 쳤다.
『이봐、방에 이양 있나?』
그러자 방안에서、
『네、있어요』
하는 앳된 여자목소리가 날아 나왔다.
『이리 나와 봐!』
왕고참이 마치 명령하듯 말하였다.
기섭은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렸다. 다소 질리기도 하는데、가슴 속에선 야릇한 기대 같은 것이 출렁거렸다.
잠시 후 방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곱게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은、앳되게 뵈는 여자가 나왔다. 그 여자는 하얀 맨발에 분홍색 샌들을 신고 남자들에게 다가왔다.
『왜요?』
하고 묻는 그 여자의 빨간 입술에서는 꽃 같은 웃음이 피어나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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