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에서 가져온 조각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 규모와 짜임새와 진열의 정성과 예술성에 대해서는 차치하고라도 「2천년 조각의 전통을 가진 이태리사람들은 정말 조각의 천재들이 아닌가」하는 첫인상을 받은 것이 우선 그랬다.
그리고 「예술이란 무엇인가」「예술의 목표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삶이란 무엇인가」「어떻게 살 것인가」「종교와 예술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시각의 세계 이외에 또 다른 세계란 어떤 것인가」「영성ㆍ신성 또 영원이란 무엇인가」… 그런 풀리지 않는 물음에 부딪히며 착잡한 생각을 하였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종교미술국제전」에는 바티깐 소장품 중에서도 정선된 작품들이 온 것으로 보여 졌다.
한 점 한 점 어느 면으로나 흠 잡을 수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으로 꽉 차는 긴장감에 젖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된 내용으로 보면 마르띠니 이후 20세기 세계조각사를 빛낸 대가들의 것이 거의 출품되고 있었다.
성 베드로성당의 문을 만든 두 사람의 조각가의 작품이 골라져 왔다. 「죽음의 문」「부활의 문」을 만든 만쑤의「교황 요한23세」와 밍구치가 만든 그 문의 부분인「카인과 아벨」「잡혀가는 노예들」등 2점의 릴리프(浮彫)가 전시되고 있고、교황 알현소 전면 단상에 예수 부활상을 만든 화치니는 그 아름다운 원형을、멧씨나는「시에나의 까타리나성녀」를、치미낙은 「성모영보」를 각각 선보이고 있으며 세계 최상급의 메달리스트인 깔벨리는 20개의 소장품 중에서 골라진 5점이 와 있다.
16명의 대조각가들의 작품 20여점과 프랑스ㆍ독일 쪽에서 보내온 것 등 모두 30여점이 예술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주의 화가 폰타나의 특이한 수도자상、미래파 화가 콘티의 그리스도의 얼굴、영국 현대조각의 개척자라고 말할 수 있는 엡스타인의「성모자상」등 바티깐의 정수가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빛나고 있다.
여기 몇 점의 작품을 예로 들어서 그 구체적인 단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치미낙의 「성모영보」부조가 전시되고 있는데 장차 당신이 구세주를 낳을 것이라는 뜻밖의 통고를 받는 순간의 마리아를 표상하는데 있어서 연약하고 섬세한 성모로 표현한다. 빛이 가볍게 두 갈래로 내려오는데 손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뒤편으로 모아지고 육체성은 거의 흔적만 있고 일렁이는 옷이 빛을 받게 하고 있다. 구석구석 애정으로 가득한 형태는 자기 성의 포기、순전한 내맡김을 상징하고 얼굴은 벽면에서 떨어져 나올 듯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전혀 조형미와의 관계로부터는 이질적인 현상으로 보일 것이다. 바로 그 점이 문제인 것이다.
멍구치의 부조는 「카인과 아벨」「잡혀가는 노예」부분으로、모두가 악마적인 얼굴 찌그러진 형상들을 하고 있는데 카인은 지금도 아벨을 죽이고 있는 채찍을 가진 자는 지금도 노예들을 학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카인의 잔학성은 지금도 아벨의 순진성을 죽이고 있고 폭력은 지금도、또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인류의 비극으로 남을 것이 아닌가. 대성당의 문을 왜 그런 이야기로 만들었나 생각해 봄직하다.
화치니의「부활상」은 교황 알현소에 있는 필생의 역작의 원형이다. 이 작품은 놀라울 만큼 섬세하면서도 극적인 표현으로 부활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다.
올리브나무는 우거져 춤추는 것 같고 그 위로 장쾌한 빛이 쏟아지고 있다. 그 빛 속으로 예수의 엄숙한 형상이 솟아오르고 있다. 조각이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조각성을 넘어서 장엄한 파노라마를 만들고 있는데 이 작품은 바티깐에서도 공개를 잘 하지 않는 희귀한 것으로 예술성 높은 명작인 것이다.
멧씨나의 「시에나의 까타리나성녀」는 정말 보기 드문 아름다운 작품이다. 어떤 각도에서 관찰을 해보아도 완벽한 조각성을 조직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만큼 명작이 아닌가 싶다. 2천년 이태리조각의 전통을 한눈으로 보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말할 수 없는 즉 언어를 초월한 정신성으로 현현하는 것이다.
덕수궁 현대미술관 「현대종교미술 국제전」을 보면서 시각예술의 역할과 그 사명에 대해서 깊은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가 없다. 영원한 것에 대한 가슴속으로부터의 접촉、그 따스함과 신비、우리들은 어떤 커다란 것 속에서 한부분이라는 것、삶에 대한 자각、예술은 무한성과 무슨 관계인가… 그런 긴 여운을 갖게 된다.
조각은 일반적으로 방법상 어떤 사상이나 미지의 것에 대한 표상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는데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고서는 그 이야기의 명료성과 깊은 상징성에 대해서 한정 없는 크기를 느낀다. 유한에서 무한에 이르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조각 예술에 있어서 종교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로써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을 수가 있었다. 초자연의 세계를 눈으로 짐작해서 건너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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