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하나 사귀게 해줄려구. 이 사람한테 인사해. 나와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인데 이양처럼 몹시 외로운 사람이야…』
하고 왕고참이 말하였다.
『네、그러세요?… 저、처음 뵙는 분께 인사드리겠어요. 이양이라구 불러주세요. 앞으로 많이 찾아주시고 그리고 사랑해 주세요』
그 여자는 몸을 틀듯이 귀엽게 숙이며 기섭에게 예쁜 목소리로 나긋나긋 인사하였다.
『예예…』
기섭은 불안정한 소리를 내며 괜히 쩔쩔 매지려는 자신을 바로 잡느라고 애를 썼다.
그 여자는 방긋방긋 웃으며 기섭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전 처음 뵙는 분께 앞으로 뭐라구 불러드려야 되나요?』
그 여자는 기섭을 빤히 보며 물었다.
『예、저 그냥 바、바퀴라고 불러 주시면데유』
『호호호、재미있는 분이시네』
『내 귀때기가 바퀴처럼 생겼다구 해서 그런 별명이 생겼지유』
기섭은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겸연쩍게 웃었다.
웃지 않고 있던 왕고참이 엄숙한 기운을 만들어 내며 입을 열었다.
『이 아가씨、너와 처지가 비슷해. 부모형제라곤 하나도 없어. 일가친척과 외가는 있지만 아무에게도 꼴 보이기 싫다고 술집여자가 돼 버렸어. 이런 술집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외롭게 혼자 사는 신세야』
그리고 왕고참은
『그러나、비록 술집 여자지만 몸과 마음이 순결한 여자니까…』
하고 말하였다.
기섭은 갑자기 마음이 숙연하여졌다. 여자가 다시 쳐다보여졌고 퍽도 가련하게 느껴졌다.
『둘다 외롭고 삭막한 사람들이니까 서로 마음 통하는 바가 있을거야. 피차간에 외로움을 나누고 위로하면서 친밀하게 지내도록 해봐』
왕고참의 말이 아니더라도 기섭은 벌써부터 여자 쪽으로 무척 마음이 끌리는 것이었다. 그 여자와 오래앉아 얘기하고 싶고、이것저것을 알고 싶고 매일매일 만나고 싶고 찰싹 붙어있고 싶은 마음이 별안간에 가슴 가득히 차버렸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구나. 나처럼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구나…
기섭은 그런 생각 속에 파묻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과 여자가 겉의 외로운 처지는 같지만 속바탕은 다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출(賤出)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비천한 일만 하며 살아왔는데… 아주 미련하고 못난 사람인데…
그는 곧 몹시 외로와졌고 슬픔 속에 빠져버렸다. 그는 여자를 보기가 두렵기도 해서 머리를 푹 떨구었다.
『왜요? 피곤하세요? 아직 취하신 것 같지는 않은데… 자、술 더 드세요. 전 웬일인지 진심으로 성의를 다 바치고 싶네요』
여자는 따뜻하게 말해주면서 두 손으로 술잔을 들어 기섭에게 내밀었다. 기섭은 얼굴을 들고 다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에 그 여자는 한없이 다정하게 스며들어 왔다.
『웬지 얼굴이 퍽 슬픈 빛이네요. 자、술로 기분을 달래세요』
기섭은 술잔을 받아들었다. 따스한 듯、서늘한 듯、알 수 없는 기운이 전신으로 탐실하게 스며들었다. 기쁨같은 것이、아니 진한 슬픔이 자욱해져서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나오려고 하였다. 그는 목이 메이는 것을 무릅쓰고 술잔을 기울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