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믿음과 투철한 사상으로 그 생활과 생각에 단순화된 사람과의 만남은 늘 기분 좋은 일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기교로써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매우 잘 닦아진、또는 천진무구한 단순한 마음이 아름다운 것을 나타낸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술에 있어서도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능숙한 기교가 오히려 아름다움을 겉돌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전시된 루오의 판화와 샤갈의 성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 주제가 신앙적인 것이어서가 아니라 참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게 한 행복한 기회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작가에 있어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나간다는 것이 엄숙한 그 작가의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그 작업을 통해서 작가는 영원과 대화하고 그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며 기쁨과 인류의 고통을 동시에 누린다. 급기야는 하느님과 만나는 것이다.
루오의 판화는 구약성서에 다윗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시편의 1절『주여 우리를 긍련히 여기소서』의 머리말을 인용한 것으로 1948년에 제작을 의뢰한 화상 보랴르에 의해 출판된 것이다. 검정과 흰색으로 격렬한 형체와 고뇌하는 듯한 필치로써 루오는 기도하고 명상하며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한장 한장마다 다윗이 울부짖는『우리를 긍련히 여기소서』라는 소리가 간절히 담겨져 있다. 제목이 『이 세상 끝까지 주는 고통을 받으신다』『세상의 어머니가 싫어하는 전쟁』『아침기도를 노래하라. 해는 다시 떠오른다』『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등 성경과 인생에 나타난 드라마를 인쇄소에서 잉크를 만지며 사색하고 예술의 세계에서 신음한 작품들이다.
루오의 전기에서는 동판화를 제작하던 이 시기를 루오가 완전히 흑백의 세계에 몰두한 몰아적 시기라고 기술하고 있다.
회화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든 예가 있었을까. 이것은 루오가 자기 자신과의 내적 투쟁이며 단조로운 흑색잉크에서 최대의 진폭을 발견하려는 끈질긴 노력의 흔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판화의 기법은 전통적인 기법과 아무 인연이 없고 단조로운 화면은 진실과 박진감에 넘치는 루오의 마음의 호소로 변하였다. 이러한 루오의 작품은 현대에 있어서 회화사뿐 아니라 회화가 종교적 표현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의 문제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루오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하느님과 만나고 있다.
또 한 벽면은 구약성경을 주제로 한 샤갈의 작품이 20점、제본된 성경 소묘책 한권이 우리를 기다린다. 샤갈이 평생을 두고 심혈을 기울인 이 20점의 동판화는 샤갈 자신이 간직하였던 걸작들이다.
작은 화면 하나하나는 샤갈 특유의 유머러스한 형체와 자유로운 표현으로 이야기가 섬세하게 전개된다.
20세기의 최후의 살아있는 거장 샤갈은 본래 러시아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빠리」에 나온 것은 그가 22세가 되던 해인 1910년이었다. 그 후 20세기 미술사의 창출자이며 증인이 되었다. 그가 성경을 그리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한 유대교의 집안에서 익혀진 신심이 말년에 성화로 나타난 것이다. 샤갈의 많은 유화들은 그의 인생을 노래한 것들이다.
이름 그대로 인생을 위한 즐거운 예술이었다.
동판화의 기법은 그가 성경의 이야기를 담는 좋은 그릇이 되었다. 친절한 할아버지가 손자들과 옛이야기를 하듯 가는 선들이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는다. 애정에 넘치는 이 판화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특히 동판화는 원화를 보지 않고는 그 섬세한 감흥을 느낄 수 없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피부에 와 닿은 즐거움이 넘쳐흐르는 것이다.
샤갈과 루오는 재미있는 대조를 이루며、금세기 최고의 이 걸작들은 참으로 예술은 위대하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으로부터의 찬미를 하게 된다.
그 외 마띠스의 「흑색제의」는 1948년경의 것으로 마띠스가 설계한 방스성당의 건립과 더불어 만들어진 것이다. 마띠스는 성당뿐 아니라 내부의 벽화、유리화、십자가、촛대 등 성구의 일체를 만들었는데 현대의 화가가 교회미술에 직접 참여하게 된 대표적 걸작중의 하나이다. 「흑색제의」는 그러한 시기의 기념할만한 명물이다. 바티깐실에 또 하나의 녹색 제의가 우리 눈을 끈다.
몇점 안 되는 조각 작품도 역시 교회미술의 이정표 같은 것으로 우리 세대에 길이 기념할 것들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