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미술이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듯이 특히 종교미술의 경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신앙심의 발로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술적 표현은 교회의 모든 조형물들을 아름답게 할뿐 아니라 그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도 만드는 과정을 통하여 닦아지고 나아가서 하느님과 만나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기쁨도 생기고 따라서 보람도 있게 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것들은 값진 것이며 그것이 축적되어 문화가 생긴다. 우리 교회가 이백년을 맞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조형언어로서 교회의 미술문화를 이루어 놓을 만큼 기간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우리도 서양의 모방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물려받은 우리의 문화를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하는 미술을 창안하고 참 우리의 노래를 읊을 때가 된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 서양의 교회미술과의 만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게 하는데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불란서관의 유리화가 그것이다. 유리화란 단어는 이번에 처음 써보는 말로서 서양의 스테인드그라스를 의미한다. 그 말 자체가 생소한 것처럼 유리화의 역사는 실로 우리나라에 있어 일천하고 그 어느 나라에도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잡한 것이 마구 성당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수십년 혹은 수백년을 지나 오늘을 되돌아보고 우리문화의 자랑으로 여길 작품이 과연 얼마나 났을 것인가、이런 문제를 놓고 교회의 문화적인 장래에 대한 일을 염려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불란서는 서구에 있어서 제2차 대전 후 교회에 새로운 미술을 도입、현대의 교회를 보다 새롭게 표현한 선도적인 나라이다. 특히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현대미술이 어떻게 교회와 더불어 이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점이다. 이런 지점에 이르기까지 불란서도 현대의 작가와 교회 사이에 많은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교회는 항상 옛 양식을 고수하려고 하고 새로운 미술의 조류는 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강력한 의지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간단히 부정할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삽화에서 보는 이 샤갈의 유리화는 1962년에 제작된 것으로 불란서의 한 성당의 장미창이다. 고딕식으로 된 창들을 마치 하나의 화면처럼 아무런 틀의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인물과 새들이 배치되고 있다. 중앙의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이 아니라 왕관을 쓴 희망과 기쁨의 주인으로 그려져 있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샤갈이 성당의 장미창을 그린다는 것을 상상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샤갈의 자유로운 회화의 세계는 너무도 아름다운 장미창을 만들어 이 시대의 대표적 걸작으로 우리는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샤갈은 이 장미창을 계기로 많은 유리화를 교회로 부터 주문받아 제작하였다. 그의 푸른 색조는 「샤갈부부」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낳게 하였다.
마네씨에의 유리화는 전시실 입구에 있는 대형의 추상화이다. 2차대전 이후의 불란서의 화단에 중요한 작가로 알려진 마네씨에는 강력한 주제 즉 예수 수난십자가 부활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그렸고、강력한 구성으로 유리화를 많이 제작하였다. 우리 시대에 있어서 뛰어난 종교미술의 가치라고 말 할 수 있는 이 유리화는 현대미술과 현대의 종교와의 관계를 잘 대변해 주는 것으로 귀중한 교회의 문화적 자산이다.
뽀리아꼬프의 이중구성、뽀리아꼬프는 러시아 출신 불란서 사람으로 러시아에서 정교계통의 성화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으로 감각적이기 보다는 정신적인 깊이를 잘 표현한 탁월한 추상 화가이다. 여기에 전시된 푸른색조의 단순한 유리화는 당시 문화상이었던 앙드레 말로의 주문으로 제작된 걸작품으로 그의 심오한 정신세계가 유리라는 재질로 매우 잘 소화된 작품이다.
비예이라 다 실바 구성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 유리화는 그 맞은편에 걸려있는 유리그림 밑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바로 그 사람의 작품 그것이다.
섬세한 표현과 샤갈의 유리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유리엣칭수법도 자연스럽게 도입하여 그려졌고 그가 해석한 건축공간도 (여기에서는 볼 수 없으나)매우 민감하게 파악、유리그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대의 중요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 외 보댕、드로네 등 중요한 작가의 작품도 있으나、모두가 현대의 대표적 유리화의 면모를 볼 수 있으며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유리화가 어느 건축공간에 놓여져 있느냐는 것을 볼 수 없어 유감이나 실제로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며 보는 사람 나름으로 공간을 상상해 보는 수밖에는 별 수가 없다.
유리화는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어느 공간과의 대화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여하간 귀한 자료를 우리는 앉아서 보고 유리화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