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성인들 중에는 유명한 殉敎一家가 여럿 있었는데、그 중에서도 유 소사 체칠리아의 집안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체칠리아에 대한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그녀의 신앙생활과 함께 그 가족의 순교 내용을 이해하고 깊은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본래 체칠리아는 외교인이었으나 1801년에 순교한 丁若鍾 아우구스띠노의 後室로 들어가면서 그의 권고에 힘입어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남편이 체포될 당시 그녀도 세 아이와 함께 옥에 갇혔는데 남편이 순교한 후 모두가 석방되었다. 가산은 적몰되었으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그녀는 살길이 막막하였다. 이에 자식들을 데리고 廣州의 마재(馬峴)에 있는 시아주버니댁으로 갔는데、시아주버니는 그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여러 가지로 괴롭히기만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맏딸이 사망하였고、1801년에 순교한 前室 아들 丁哲祥 가롤로의 아내와 아들도 사망하였다. 이제 아들 丁夏祥 바오로와 딸 丁情惠 엘리사벳 만이 그녀의 곁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체칠리아는 신자의 본분을 지키며 조금도 마음을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하루는 그녀가 꿈을 꾸었는데、꿈속에서 남편 아우구스띠노가 나타나『나는 천국에 방이 여덟개 있는 집을 지었오. 그 중 다섯은 찼는데 나머지 세 방은 아직 빈 채로 있다오. 그러니 생활의 곤궁함을 잘 참아내어 꼭 우리를 만나러 오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녀의 식구 8명 중에서 5명이 사망하고 3명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꿈속에서 들은 남편의 말은 체칠리아에게 새로운 용기를 갖도록 하였으며、이에 그녀는 信心生活을 굳건히 하여 나갔다.
그녀의 아들 정하상 바오로는 선교사들을 조선에 입국시키기 위하여 여러 해 동안을 모친과 떨어져 살아야만 하였다. 이 일은 자식을 생각하는 체칠리아에게 커다란 시련을 주었다. 바오로가 북경으로 길을 떠날 때 마다 체칠리아의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 찼으니、다시는 만날 수가 없는 하직을 하는듯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천주께서 주신 신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였으며 아들이 하는 일에 항상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였다. 그 후 주교와 신부가 입국하고 아들이 服事의 일을 맡게 되자 그녀는 아들을 따라다니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제 그녀는 너무나 연로하여 가사를 돌볼 수가 없었으므로 거의 모든 시간을 信仰生活에만 몰두하였다. 그녀의 박애심은 대단하여 어느 때에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하여 자신의 식사를 빠뜨리기도 하였다 한다.
1839년 기해교난이 일어나 사방에서 교우들이 체포를 당하자 그녀의 신변을 위험스럽게 여긴 조카 한사람이 와서 피신처를 제공하겠다고 말하였으나 그녀는 『나는 늘 순교하기를 원하였는데 이제 그 기회가 왔으니 아들 바오로와 함께 순교할 생각이다』라고 하며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던 중 7월 11일에 아들이 체포되고 이어 19일에는 그녀도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그녀는 7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國事犯과 같이 紅絲로 결박되어 압송당하였다. 그것은 그의 집안 내력 때문인 탓도 있었지만、아들 바오로가 외국인과 상종하였던 이유도 있었다.
훗날 순교한 체칠리아의 딸 정정혜 엘리사벳도 모친의 신앙심을 따라 열심히 교리를 이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모친과 오라버니를 따라다니며 항상 그 뒷받침을 하였으며、일찍부터 童貞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이러한 생활로 인하여 그녀는 가족들과 같은 시기에 체포되어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며칠 동안 옥에 갇혀 있던 체칠리아는 捕長앞으로 불려나가 심문을 당하였다. 포장은 천주교인임을 확인한 후『천주를 배반하고 공범자들을 대라』고 위협하였다. 이에 그녀는 『비록 죽을지라고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읍니다. 그리고 이렇게 늙은 것이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읍니까?』라고 하며 배교와 밀고를 거절하였다. 그녀의 행동과 답변은 항상 솔직하고 점잖았으며、管刑을 2백30대나 맞으면서도 결코 마음을 굽히지 아니하였다.
평소에 그녀는 斬首로 순교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법률에는 노인을 참수시킬 수가 없게 되어 있었으므로 관리들은 그녀를 매로써 죽이고자 하여 누차 문초와 형벌을 거듭하였다.
체칠리아는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맡기고 그 모든 것을 말없이 참아 내었다. 그러나 고령으로 쇠약해진 그녀의 몸은 이를 받아내는데도 한도가 있었다. 그리하여 몇 달 동안을 옥중에서 신음하다가 마침내 11월 23일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며 순교하였으니、이로써 체칠리아는 성인의 영광된 자리에 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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