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같이 울기만 하시네、울지만 말구 대답해 주세요. 날 사랑하시죠? 나와 결혼해서 살고 싶으시죠?』
가슴으로 파고드는 상냥하고 나긋하고 감미로운 음성 때문에 기섭은 전신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응、응!』
착 가라앉은 목울대를 치밀고 나오는 소리로 그는 황홀하게 대답하였다.
『그러시다면 월남에 갔다 오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응、나 월남에 가겠어! 가서 돈 벌어 오겠어!』
『약속하시는 거죠?』
『응!』
『정말 약속했어요!』
『으응!』
그 여자는 집요하게、야무진 어조로 다짐을 받은 다음、기섭의 입술에 따뜻하고 상큼한 볼을 갖다대었다.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세요! 끝없이요!』
『응、으응、정말로!』
기섭은 그 여자의 몸을 으스러져라 껴안고 양 볼에 입술을 부벼 대었다. 넌 내 여자다. 나도 여자가 있다는 뿌듯함이 그를 한없이 기운차게 만들었다. 이 여자를 끔찍이 진심으로 사랑해야지! …
그리고 그는 깊은 잠속으로 떨어졌다.
다음날 새벽、기섭은 방안으로 들어와서 그의 베갯맡으로 떨어지는 맑은 종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떠보니 아직 온 방안에 어둠이 가득하였다. 방안의 그 어둠속에、그리고 종소리가 가득하였다. 종소리는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은 율동으로 어둠 속에서 나래짓을 하며 그의 가슴에 가득히 안겨오는 것이었다.
기섭은 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전율하였다. 맑은 종소리처럼 정신이 해맑게 깨어나는 듯 하면서 온 가슴으로 이상한 두근거림이 덤벼드는 것 같았다. 곧 함빡 설레이며 뜨겁게 끓어대는 가슴이었다. 아아、고향 마을 어귀 고개 마루 옆의 산날 망에서 듣던 종소리였다. 그리움과 애틋함과 울울함으로 가슴 저밀때、평화와 위안으로 그의 가슴에 안겨오던 종소리였다. 그러나 아아、그 산날 망에서 작별을 고한 종소리인데…!
기섭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의 찬 이마에 종소리가 좀 더 맑게 부딪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종소리는 마냥 온 방안에 가득하였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문 열어라 문 열어라! 하는 외침들이 종소리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종소리에 밀려서 방안으로 쫓겨 들어온 어둠이 한겹 한겹 옷을 벗고 곧 흩어져 달아날것만 같았다. 기섭은 방문밖에 다가올 여명을 감지하면서 벅찬 가슴으로 또한번 몸을 떨었다.
여자는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여자는 기섭의 기척에 잠을 깼다. 종소리가 멎은 다음이었다.
『일찍 깨셨네요.』
여자가 누운 채로 잠기 묻은 소리로 말하였다.
『종소리에 잠이 깼다. 그리구 종소리를 듣구 있었지…』
『그래요! 난 만성이 돼서 아무렇지두 않은데…』
『어디에서 오는 소리지?』
『멀지 않은 곳에 성당이 있어요』
『성당?…』
『그 종소리가 듣기 좋으세요?』
『…난 옛날부터 성당의 종소리를 좋아했어. 성당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종소리를 듣구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와 졌거든. 성당의 종소리는 내게 어떤 위안이랑 희망과 용기 같은 것을 주는 것 같아…!』
『어머、그래요? 듣기 좋은 말이네요』
하며 여자가 가볍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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