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신청 관계로 여늬 날과는 달리 장군관사에 늦게 온 기섭을 보고 파월신청을 했느냐고 장군 부인이 물었다. 기섭은 야릇한 죄스러움 때문에 작은 소리로 겨우 대답하였다. 부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섭섭하고 아쉬운듯한 빛깔이 잠시 얼굴에 떠올랐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사령부 부관참모부로부터 기섭에게 파월특명이 떨어졌다. 기섭이 장군관사에 출근하여 일과를 시작하였을 때 경비대 특수파견대의 선임하사가 특명지를 가지고 와서 기섭에게 일러주던 것이었다. 그리고 선임하사는 장군 부인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장군부인은 기섭을 부르더니 따뜻한 말로 그의 지금까지의 노고를 치하하고 부디 몸 성이 돌아오기를 당부하였다. 그리고 부인은 기섭에게 상당액의 용돈을 주었다.
기섭은 사모님이 너무도 고맙고 또 한차례 야릇한 죄스러움과 섭섭함이 가슴에 옹켜 들어서 눈물이 나왔다. 그는 깊이 허리를 굽혀 부인에게 절을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다음 정들었던 장군관사를 나왔다.
기섭은 일단 경비대본부로 가서 경비대장에게 전출신고를 하고 특수파견대 숙소로 돌아가서 더블 백을 꾸렸다. 더블 백을 꾸릴 때의 그 특이한 무거운 감정 때문에 그는 손에서 힘이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따블 백을 들쳐 메고 숙소를 나갔다. 그에게 말뚝을 박으라고 수차 강권하였던 선임하사와도 작별을 하였다.
그리고 기섭은 곧장 그 여자가 있는 술집으로 갔다.
그 여자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고 아내처럼 포근하게 대해 주었다.
그는 다짜고짜 그 여자를 껴안고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꺄륵 꺄륵 웃는 그녀의 미처 화장을 끝내지 못한 얼굴에 마구 입을 맞췄다. 껴안은 김에 몸을 눕히고도 싶었지만 웬지 몸에 기운이 없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얌전히 방바닥에 몸을 앉혔다.
『오늘은 괜히 아침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픈디』
그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잘 되었네요. 나두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우리 같이 먹어요、아침겸 점심』
그녀는 생긋 소리가 날듯이 귀엽게 웃었다.
『그럴라구 내가 아침을 안 먹은 거여』
『잘 하셨어요』
그녀는 서둘러 화장을 마치고 방을 나갔다.
곧 부엌 쪽에서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섭은 부엌에서 들려오는 그 신선하고 아늑한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방바닥에 놓여져 있는 그녀의 화장품그릇을 바라보면서 안온하고 자랑스러운 기분을 맛보았다. 진하고도 살풋한 행복감이었다.
그러나 곧 그녀와도 헤어져야 한다는 것、잠시 후면 엄연하고 분명하게 닥쳐올 그 사실이 어떤 절박감으로 가슴을 쳐서 그는 진저리를 쳤다.
『문 좀 열어 주세요』
그녀는 어느 새 밥상을 들고 방문 앞에 와 있었다.
『응』
기섭은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그녀는 정숙한 주부 같은 모습으로 생긋이 웃으며 들어왔다. 곧 방 가운데에 밥상을 놓고、기섭과 그녀는 마주 앉았다. 밥에는 부드러운 온기가 실려 있었다.
냄비뚜껑을 열자 잘 끓여진 생선찌개의 상큼하고 개운한 냄새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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