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지역에서 레지오단원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인근 공소치고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도 없다.
진주의 사도 李太奎씨(요한ㆍ75세)
서부 경남에 처음으로 레지오 마리애의 씨를 뿌려 오늘의 진주 꼬미씨움을 있게 한 장본인이며 동시에 진주에 신용협동조합을 최초로 도입、상부상조를 생활토록한 개척자이다.
그 외에도 공소 순회방문과 공소활성화 지원 및 재소자교리지도ㆍ무료침술봉사 등 숨은 봉사자로서의 그의 삶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크리스찬의 삶 바로 그것이다.
24년간 레지오회합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한 사실 하나만 봐도 레지오에 대한 그의 열성과 사랑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서른여덟의 나이로 가톨릭에 입교한 후 한번도 곁눈 팔지 않고 오직 한길만을 걸어온 그의 신앙생활에 있어 그의 입교 동기는 무척이나 아이러니컬하다.
50여년전 일제치하에서 일본유학생으로「오오사까」관서 침구학교에 다녔던 그는 당시 만연하던 사회주의운동에 심취한 무신론자였다. 「종교는 아편」이라고 가르치는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던 그가 180도 선회하여 가톨릭에 귀의한 것은 그의 말대로 하느님의 섭리였던 것 같다.
당시 문산본당 회장으로부터 빌려본 책 첫 장에 적힌「결과가 있는데 원인이 없겠느냐」는 귀절에서 그는 계시를 받은 듯 자신의 죄악사상을 내동댕이치고 확신을 얻어 일가족 모두들 영세케했다.
뒤늦게 하느님을 알았으니 앞선 교우보다 더 열심히 믿어야겠다는 충동을 느낀 그는 해방 후 미군정하에서 제철만난 듯 날뛰는 공산주의자와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스스로 무덤을 파는 선량한 청년들을 구제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전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57년 부산 신선본당에서 레지오를 배워 교본 16권을 구입한 그는 진주에 돌아와 옥봉성당에 그리스당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설、서부경남에 레지오를 심기 시작했다.
당시는 부산까지 활동 및 현황보고를 하러다녔다고 회상하는 그는 15년 동안 꾸리아 단장직을 맡아 레지오 활성화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이런 연유로 그는 레지오 도입 25주년 행사때 윤 대주교의 표창장을 받았으며 마산교구 레지오 도입 20주년 때는 교황강복장을 받기도 했다.
또한 재소자들의 救靈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7년간 진주교도소를 방문、매주 수요일 1시간씩 재소자를 위한 교리를 지도、71명의 재소자를 입교시키기도 했다.
뿐아니라 그는 산청성심원의 초석을 다진 숨은 공로자로서、성심원의 前身구생원 나환자 60여명을 현재의 산청으로 이주토록 부지를 마련했다. 당시 계약한 부지의 잔금을 치르기 위해 집을 저당 잡혀 빚을 얻었던 그는 다행히 구호물자 여분이 생겨 그것을 팔아 충당함으로써 집은 날리지 않았다.
또 70년경 진주시 상대동 난민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주 1회씩 2년간 교리를 지도했던 그는 그 결과 16세대를 입교시켰다. 게다가 진양군 대옥면에 넝마주이 50여명을 이주시켜 가옥 7채를 지어 정착토록 하는 한편 그들 중 5쌍을 결혼시켜 재활의 길로 접어들도록 도와주었다.
농촌 전교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그는 자신의 탈랜트인 침술을 통한 무료진료와 함께 계속적인 공소방문을실시、공소활성화에 주력해왔다.
현재 자택에서 성모 침구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사정이 딱한 이들에게는 무료로 병을 치료해주는 한편 공소순회시 지역민 무료진료 등을 통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활동을 편 결과 사천 정동공소와 하동 진교공소를 세웠던 그는 지금도 일과가 끝난 후면 전용택시를 대절、인근공소를 계속 순회방문하면서 공소신자를 격려하고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등 소외되기 쉬운 농촌신자들의 뒷바라지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공소신자들이 자체 내 레지오를 조직토록 적극 후원하고 있는 그는 공소지원의 일환으로 경남지역 33개 공소에 난로를 기증하기도 했다. 공소가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그는 전국차원에서 공고신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난로보내기 운동을 전개하자고 주창하고 있다.
성당건립을 위해 셋방살이까지 했던 그는 현재 자신이 나가고 있는 봉곡성당을 건립한 것이 가장 가슴 뿌듯한 일이라고 말했다.
새벽 3시에 기상、1시간 반 동안 산책을 한 후 아침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그는 앞으로 하고픈 일은 진주지역에 교회묘지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슬하에는 5남 2녀를 두고 있으며 그중 장녀가 전교수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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