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12제자들을 선정해서 베드로에게 全교회권을 주시면서 세워진 교회는 그동안 2천년간 어떻게 변화되어 왔으며 분명히 예수께서는 단수명사로「명회」하나만을 세웠는데 어찌하여 오늘에는 그렇게도 많은 교회가 난립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창립이후 많은 시련 속에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2사도들이 그리스도때문에 박해를 당하여 순교하였고 이어서 초대교회는 약 3백년동안 로마제국의 권력밑에서 박해를 받았다.
4세기에 종교자유시대가 오자 즉시 정통교리에 대한 도전이 있었다. 이 첫 경우가 소위「아리안 이단」이었다. 천주교 신부였던 아리우스(Arius)는 하느님의 속성인 삼위일체에 대해서 정통교리를 부인하고 오직 천주 성부만이 하느님이시고 성자와 성신은 하느님이 아니라는 그릇된 교리를 고집했다. 교회는 너무나 당황했고 이러한 사건들이 계속된다면 그리스도의 참 진리가 보존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즉각「니체아공의회」를 열어 아리우스 신부의 사상은 그릇된 사상임을 판정하고 한분이신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이시며 성부도 성자도 성신도 꼭 같은 하느님이심을 교회의 교도권으로 가르쳤다.
교회는 계속 발전했고 이어서 게르만 민족이 천주교에 입교하여 그들의 미개성이 탈피되었고 드디어 중세기에 들어서서 교회는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정신적인 지주로 성장되었다.
11세기에는「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가「로마」교황에 도전하여 자신이 동방의 교황이라 호언장담하여 그 일파에서「로마」교황의 권위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안「로마」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역설했으나 그들은 여러가지 정치적인 또는 인간적인 이유를 들어 그들이 있는 「콘스탄티노플」이 새나라의 수도인만큼 자기들도 교황과 같은 권위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때로는 교황청을 간섭하기도 했다.
이러자 당시 교황 레오 2세는 당신의 특사를 보내어 그때의「콘스탄티노플」의 총 주교였던 체룰라리우스에게 진정 교회의 뜻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체룰라리우스 총주교는 교황특사들에게 면회까지 사절 하면서 도도했다. 그러나 교황특사들은「콘스탄티노플」의 소피아성당에 모인 신자들 앞에서 체룰라리우스 일파의 제명을 선포하고「로마」로 돌아왔다. 그때가 바로 1054년 7월 15일 오전 9시였다.
그러나 체룰라리우스 총주교는「콘스탄티노플」에 그의 일당 주교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교황을 제명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교회를 선포했다. 그때부터 동방교회는「로마」교황청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들은 드디어 교회 수위권인 베드로의 교회에서 분리되어 버렸다.
이것이 간단한、소위 동방교회의 발생사건이다.
그들은 교회의 다른 모든 의식이나 교회는 그대로 고수하면서도 오로지 교황은 부정했기 때문에 그들이 집행하는 교회의 성사는 아직도 유효하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가 급할때 천주교 신부가 없을땐 동방교회의 신부를 불러서 성사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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