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청에 매일같이 출퇴근하는 최고령의 할아버지 趙원행 회장 (75ㆍ요셉)-.
그는 비록 교구청에서 보수를 받는 유급 직원은 아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하면서 하루 30~40통에 달하는 통신교리 답안지 채점과 교재 발송업무로 봉사의 여생을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 구태어 직함을 붙인다면「수원교구 통신교리 담당자」이다.
나이 50이 넘어 뒤늦게 영세 입교한 것을 후회하고 벌충이라도 하려는듯 열정적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있는 조 회장은 지난 75년 프란치스꼬 재속회에 가입、현재 수원 형제회 회장으로서 구도자의 길도 함께 걷고 있다.
1910년 1월 28일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월곡리에서 출생한 조 회장은 약관 20세에 안성군청 면서기로 출발、안청군 군농회 총무과장을 끝으로 정년퇴직 할때까지 30여년간 공무원으로 일했다.
3살 연상인 부인 신명남씨 (모니까)와의 사이에 난 두살박이 세째딸을 홍역으로 잃은 후 그 충격으로 상심하고 있을 때 이웃 신자로부터『성당엘 나가면 죽은 아이와도 만날수 있다』는 권면에 따라 자녀들과 함께 영세 입교했으나 남의 일(?)처럼 여겼던 조 회장 이었다.
부인의 입교권면에도 요지부동이었던 조회장은 왜정시대 공무원 생활중 악명높고 권세높은 자리에 있던 동료인 산림간수 (조규호씨)가「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매사에 공손하고 모범된 표양을 보였는데『훗날 이 사람이 천주교 신자였음을 안 것이 간접적인 입교동기가 된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조 회장이 입교를 결심한 것은 부인과 함께 유아세례를 받은 장성한 외아들의 권유로 주일미사를 다녀온 후 이튿날 안성본당 (現안성구포동본당)을 방문、보좌신부로부터 3시간에 걸친 단독 교리를 수강하고 그해 (1961년) 8월 14일 50세대 영세했다.
영세한 이듬해 안성군청에서 정년 퇴직、일반 회사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던중 본당 주임신부의 요청에 따라 6년간 다니던 회사를 사직 67년 1월부터 안성본당 사무장직을 맡았다.
신자 6천명에 달하는 대본당의 행정업무와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면서 본당의 빚 30만원을 2년간에 걸쳐 정리하고 1971년 안성 대천동성당을 건립、분가시키는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안성본당 사무장 재직 6년후 안성본당 죽산공소 전교회장으로 3개월간 봉직했는데 외아들 성헌씨 (49ㆍ베드로)가 수원에 정착함으로써 73년부터 수원 아들집에서 지내오고 있다.
여생을 공소 전교회장으로 봉사하고 싶은 열망에 가득찼으나 아들과 아내의 간청(?)으로 수원에 온 조 회장은 이 열망을 교회출판물 보급활동을 대신했다.
안성본당을 떠날 때 신자들이 모아준 금반지 5돈값 2만원과 자녀들의 용돈 3만원등 5만원으로 76년 가톨릭출판사 발행서적 1백권을 구입、각 본당을 찾아다니면서 보급활동을 펼쳤다.
용돈이 궁해서 시작한것으로 안 아들과 친구들이 펄쩍 뛰면서 만류했으나 목적이 뚜렷한 조 회장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교회서적 보급에 나선 조 회장은 78년부터 가톨릭신문ㆍ경향잡지ㆍ소년등 교회 정기간행물 보급에도 앞장섰는데、통신교리 교재를 자비로 구입、우표대금까지 부담해가면서 통신교리를 통한 전교활동에 뛰어들었다.
지난 80년 고희생신을 지나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낀 조 회장은 출판물 보급업무 일체를 교구청에 인계하고 현재는 수원교구 통신교리 업무만을 전담하고 있다.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알고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알도록 하기위해서는 교회출판물 보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원래 책을 좋아 하여 그 보급에 참여했다는 조 회장은 교회당국이 교회 출판물 보급에 적극적이지 못함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조 회장의 이러한 열성에 감복、수원교구는 교구차원에서 유일하게 지난 81년 2월 11일 통신교리교재는 총 6천 2백여부에 달하고 있으며 1천 2백명이 수료하여 영세자수는 5백여명에 이르고 있다.
『CCK에서 일괄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통신교리를 각 교구차원에서 운영토록 해야합니다』오랫동안 수원교구 통신교리를 담당해온 조 회장은『각 교구가 통신교리를 분담하여 실시하면 레지오 단원들의 방문활동등으로 우편에만 의존하는 현행통신 교리의 문제점을 극소화시킬 수 있으며 교구나 일선본당에서의 통신교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통신교리의 이용도를 극대화 시킬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생을 통신교리 업무에바치겠다고 거듭다짐하는 조회장은 교회출판물 재고를 교구청에 넘기면서 마련된 기금과 용돈등으로 1백만원을 저축해놓고 통신교리 수료자 교육비와 예비자용 교리서출판비로 각각 50만원씩 사용할 소박한 꿈에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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