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르인(민수6、1~21)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자신을 하느님의 몫으로 구별지어 놓기로 서약한 사람을 나지르인이라고 한다. 나지르인은 제도적으로 백성의 지도자는 아니었으나 그들은 하느님 백성의 생활에 영향을 준 정신적인 지도자들이라고 할수 있다. 그들은「①포도로 만든 음료수나 식품을 먹지않는다. ②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③시체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다. 이처럼 유별난 그들 생활양식의 목적은 곧 유일신 야훼 하느님께 대한 충성이다. 그들이 포도를 먹지 않음은 포도가 가나안의 제사의식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여지고 가나안 문화를 대표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포도를 멀리한 이유는 이교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야훼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성령에 충만해야 하는 나지르인은 술에 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또 다른 방법으로써 그들은 가나인 문화의 상징인 이발을 하지않았다. 그들은 또한 죄악을 상징하는 죽음에 접근하지 않음으로써 부정타지 않고、그의 거룩한 신분을 손상시키려 하지 않았다.
축복을 주는 사제(6、24~27)
사제직은 레위인 중에서 아론의 아들들이 특별히 성별되어 계승되는 직분이다. 사제는 하느님과 백성사이에서 중개역할을 하는 직책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백성이 봉헌하는 제물을 하느님의 제단에 바치며、야훼 하느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는 사람이다. 그가 행하는 축복의 말은 대단한 위력을 지닌 말씀이었다. 하느님은 사제의 축복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지키시고、원수와 불행을 물리치고 평화와 구원을 주신다.
70인장로(11、24~30)
모세가 혼자서 직무를 감당하지 못했을 때 그의 보좌관으로 70인의 장로가 임명되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도 모세에게 주신 영을 주셨고 그 증거로써 그들은 예언을 하였다. 그런데 70인 장로와 더불어 모세와 한자리에 있지 않고 진중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 중 두사람도 이 야훼의 영을 받았다. 이를 시기하는 사람들에게 모세는『야훼께서 당신의 영을 이 백성에게 주시어 모두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11、29)라고 했다. 야훼의 영을 받은 사람들、교회의 지도자들 간에 다른 이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며、동역자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예는 민수기의 공동체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 부족한 도구들을 쓰시어 그 백성을 인도해 가신다. 광야의 이스라엘인들은 70인 장로의 임명으로 행정체제가 잡히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조직되었다.
반역한 지도자들(12、1~16、50)
광야의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중 야훼께 받은 모세의 지도력은 인정치 않고 반역한 지도자들이 있다. 모세의 형제간인 미리암은 여자 예언자였고、아론은 사제였다. 그들은 그들이 받은 직책을 무기삼아 모세를 비방하며 야훼께 불평 불만을 터뜨렸다. 야심에 가득찬 그 형제들의 비난은 세기를 통해가며 교회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는 질투심에 기인한것이었다. 야훼께 받은 지도자로서의 직위와 개인의 탁월성에 대한 질투가 자신과 공동체를 불행하게 만들곤 한다. 미리암과 아론의 질투심과는 대조적으로 모세의 겸손함과 온유함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온유함은 무력한 후퇴나 위선적인 자학을 뜻하지는 않는다. 온유는 반대앞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려 않고、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존하는데서 나오는 겸손을 뜻한다. 이렇듯 하느님 앞에 온유한 자는 온세상 사람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땅을 차지할수가 있다. (마태5、5참조) 하느님은 스스로를 변화하지 않는 모세를 위해 직접 간여하시어 미리암을 문둥병으로 치셨다. 미리암과 아론은 하느님백성의 공동체안에서 부여받은 특전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최상의 지위를 탐냈었다. 그러나 미리암은 격리와 추방을 의미하는 나병의 벌을 받아 그 백성 가운데서 설자리 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이에 겁에 질린 아론이 모세를 찾는다. 이때 복수하는 대신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세의 온유함 속에는 권위와 자비가 동시에 있었다. 모세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였다.
그후 모세의 영도를 부인하는 아비담과 다단의 반란(16、12)이나 2백 50명의 각 지파 대표로 구성된 코라의 반란군에게도 모세는 스스로 나서서 싸우거나 해결을 서두르지 않고、그 문제의 해결도 역시 야훼께 맡겼다. 광야의 여정이 야훼께서 주관하는것인지、아니면 모세 개인의 일인지에 대한 판결은 야훼 친히 해 주신다. 모세도 걷잡을 수 없는 반대와 불신앙에 직면해서도 그 백성을 위해 하느님께 용서를 빌며 간절히 중재한 지도자였다. 이로써 반역한 죄인들의 집합보다도 같은 이스라엘 백성은 전 인류에게 하느님을 증거하고、구원의 매개체가 되는 사명을 계속해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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