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박 종원 아우구스띠노는 1792년(正祖16)경에 서울의 중인(中人)집안에서 태어났다. 「이선」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리었던 그는 본래 성격이 부드럽고 상냥하며 열심히 학문을 닦아 지식과 재간을 겸비하게 되었다. 비록 어려서 부친을 여의어 극빈한 가운데서 살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처지를 불평없이 받아 들이는 한편, 모친에 대한 효성을 극진히 하고 교리의 본분도 충실히 지켜 나갔다.
박애심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해 주려는 일에 전심하여 외교인들을 가르치고 격려하였으며、죽을 위험에 처한 외교인 어린이들에게 대세 주는 것을 자신의 직분으로 생각하였다.
나이가 들어 아우구스띠노는 열성적인 신자 가정의 딸인 고 순이(高順伊)바르바라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그녀는 남편과 함께 가정을 교우들의 모범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제 아우구스띠노는 가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우리 주 예수께서 나처럼 불쌍한 죄인을 사랑하셨으니、나도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괴로움을 당하고 죽으셨으니、나도 그분을 위하여 괴로움을 받고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면서 순교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교우들 중에서 어떤 악습이나 부당한 일을 발견하면 그는 상냥한 말로 이야기하며 그들로 하여금 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죄를 짓는 상태에 있는 것을 볼 때에는 괴로와 하는 모습이 얼굴에 완연하게 나타났으며、항상 애덕을 가지고 권고하여 그들을 감동시켰으므로 그의 충고에 거역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이러한 그를 본 교우들은『아우구스띠노가 화난 얼굴을 하는 것을 언제나 볼 수 있을까?』하고 말하였다 한다.
어떠한 일을 당하여도 그는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고、가장 어렵다고 생각되는 일은 항상 자신이 처리했으며 남에게는 쉬운일만을 남겨주었다.
그러던 중 교우들은 선교사를 조선에 영입하기 위하여 여러가지로 노력하게 되었다. 아우구스띠노는 이때 그들에게 협력하여 머나먼 길을 여행하는등 자신의 힘이 자라는데까지 그 위대한 사업에 이바지할 생각으로 갖가지 고생을 자청해서 하였다. 그의 덕과 재능은 얼마되지 않아 앵베르(Imbert)주교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고、주교는 그를 서울의 회장(會長)에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그가 열성적으로 직책을 수행하여 이 자랑스럽고도 위험한 일에 자격이 있음을 입증하였음은 물론이다.
1839년(憲宗5)의 기해교난(己亥敎難)이 일어나자、포청(捕廳)에서는 곧 아우구스띠노를 대상자로 지목하였다. 박해의 위험이 닥친것을 안 그는 집을 떠나 친구의 집에가서 머물렀다. 그러나 회장의 직분을 지켜 밤으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옥중의 형편을 알아본 후에 여러 교우들과 함께 옥중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기에 노력하였다. 이렇게 8개월을 지낸 10월 26일에 마침내 그는 포졸들에게 발견되어 체포당하는 몸이 되었다. 이튿날에는 아내 바르바라도 체포되었으며 이리하여 그들 부부는 포청의 옥에서 만나 그 은혜를 주님께 감사하면서 새로운 고통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나가자고 서로 격려하였다.
포장(捕長)은 그들 부부가 똑같게 고문을 하도록 하였다. 계속하여 다섯 차례나 혹독한 형벌을 당하여 팔과 다리가 못쓰게 될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아우구스띠노는 신앙의 정신으로 신음소리 한번내지않았으며 항상 마음의 평온을 간직하고 있었다. 10일후에 형조(刑曹)로 이송된 그는 새로운 형벌을 여전히 참아낸 후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 형조에서 대왕대비(大王大妃)김씨(金氏)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아우구스띠노를 지목하여『그는 천당과 지옥을 마치 확실한 사실처럼 이야기하며、제사를 헛된 예식이라 하여 폐하고、천주를 충심으로 믿고 공경하여 죽을지 언정 그 마음을 돌이킬수 없노라고 맹세하였다』라 기록하고 있다. 이리하여 마침내 그는 당고개(堂峴)에서 참수되어 순교에 이르렀으니、이 때가 1840년 1월 31일(陰、1839년 12월 27일)로 그의 나이는 48세였다.
당시 그와 함께 당고개에서 순교한 교우들은 모두 일곱명이었으나、그중에서 여섯명만이 성인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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