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섭은 그녀에게 물어 이것저것 갖고 싶은 것들을 사주려고 하였지만 그녀는 한사코 반대하였다. 현금이 제일 중요하고、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앞으로의 생활에 절대 유익하다는 것이었다. 기섭은 그녀의 말을 수긍하면서、그러는 그녀가 한결 사랑스러워지는 느낌으로 가슴이 뿌듯하였다.
『성당엔 내일 가기루 해요. 내일이 마침 주일이니까、내일 낮에 함께 가서 주일미사에 참여키로 해요. 그거 좋죠?』
하는 그녀의 말에 기섭은 동의를 하였다. 내일 그녀와 함께 다시 성당에가서 처음으로 참여하게 될 미사에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그는 가슴이 충만해 지는것을 느꼈다.
『그러구 앞으로의 우리 생활에 대한 자세한 논의두 모두 내일 이후로 미루기로 해요』
하는 그녀의 말에도 기섭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음식점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나와서 영화구경을 하였다. 영화관을 나와서는 한동안 밤거리를 거닐다가 여관으로 돌아왔다.
밤이 꽤 깊어있어서 그들은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기섭은 다소 피로하였지만 참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참아선 안되었다. 그는 그녀를 꼬옥 끌어 안고 참으로 오랫만에 다시금 진실하게 그녀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그지없는 사랑을 가슴깊이 여미면서 곧 노곤한 잠에 떨어졌다.
꿈속에서도 그는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웬일일까 몸을 배배꼬고 키들키들 웃으면서 신작로위를 저만치 한들한들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녀를 붙잡으려고 그는 힘을 다하여 뛰었지만 발이 제대로 떨어지지않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펄럭펄럭이며 손을 하늘하늘 흔들며 헤헤헤 웃으며 점점 멀어지더니、숲이 우거진 산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한참 후에 그도 산 속으로 들어가서 그녀가 어느 곳에 숨었을까 하고 숲속을 헤매어 찾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숨어 있지 말고 어서 나오라고 그가 소리소리 질렀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자기를 버리고 멀리 달아나 버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금새 뿌연 슬픔이 북받쳐 올랐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아픔 때문에 기섭은 잠이 깼다. 옆 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져서 그는 퍼득 눈을 떴다.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기섭은 가슴이 이상하게 아프다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좀 몸을 일으켰다. 방안을 휘 둘러보니 꼭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처럼 허전하였다.
다음 순간에야 그는 그 까닭을 알았다. 더블백만 있고 트렁크가 없어진 것이었다. 그는 또 다음 순간에야 그 트렁크가 그녀와 함께 없어진것임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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