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권진이 아가타는 1820년(순조10년)에 몰락 양반인 권진사(權進士)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권진사는 당대에 문장과 명필로 뛰어난 학자로 행세하였던 것이다. 마침 권진사는 중년에 입교하여 가정을 잘 거느렸고 외교인이었던 그의 아내 한영이도 입교시켰다. 그러나 그는 조선에서 성직자를 일찍 만나지 못해서 임종때가서야 영세를 했고 그의 가족도 함께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권아가타의 모친 한영이 막달레나는(1839년12월29일순교)그의 남편 권진사의 임종때 간곡한 권면 부탁과 유언을 이어 받아 남편이 죽은 다음에 어린딸 권진이(아가타)를 데리고 수절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천주교의 예절과 계명을 잘지키고 또한 딸을 잘 교육하기 위해서 모녀가 일하면서 붙혀살 교우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이집 저집 교우집에 붙혀서 겨우겨우 살아가게 되었으나 그동안 겪은 모녀의 고생은 필설로 표현할수가 없는 고통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나 권아가타가 차차 성숙하면서 빼어난 미모와 굳건한 정신적 신앙심이 자연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름다운 규수로 교우중에 많은 칭찬을 받았다. 마침 그녀가 12세때 시골에 살았던 어느 교우에게 혼인이 성사되어 비록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모든 예절을 갖추어 혼례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집이 너무나 가난하여 권아가타를 시집으로 데려 갈수가 없어서 남편의 친척이었던 정바오로의 집에와서 집안살림을 맡아보게 하였던것이다.
마침그때 정하상 바오로는 그의집에 유파치삐고(방제)중국인 신부를 모셔와서 그 집에 유숙케하고 권아가타로 하여금 유신부의 모든 조석의 살림을 받들게 하였다. 마침 권아가타는 본래 타고난 미모와 민첩한 지혜와 여러가지 재주를 갖추었기 때문에 유신부는 권아가타가를 대단히 총애하였던 것이다. 그 뿐만아니라 권아가타는 당시 여교우들에게 유행했던 동정을 지키려는 동경때문에 유신부에게 그의 의향을 말하였다. 이에 유신부는 그녀가 동정을 지킬수 있도록(혼인식만 하고 아직 동거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처리를 잘 주선해서 그녀의 혼인을 무효화시켜 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으로 유신부와 권아가타 사이에 흉악한 소문이 교우들 가운데 나돌게되었고 물론 그녀의 남편이었던 사람도 가만있지 않았다. 또한 그녀자신도 이러한 복잡한 사건에 유감이 생겨서 여러달동안 신앙생활도 포기할 정도였던 것이다. 또한 이와같은 나쁜 소문으로 당시 교우들 사이에서 권아가타는 얼굴도 들수 없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교회안에 손해를 끼치게 되었던것이다. 그러나 그때 마침모방 나신부가 입국하여 모든 사실을 잘가려내어 일처리를 명백하게 잘해주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권아가타는 크게 깨닫고 통회개심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다시 부활시켜 더욱열심하게 살면서 특히 염경묵상 기도를 간절하게 하였다.
또한 항상 순교의 은총이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녀는 모친 한막달레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살면서 대단히 열심한 신심생활과 고행을 하면서 이웃에게 전교하였고 덕의 길로 권유하였다. 이때 고자(性불구)에게 출가하였던 이아가타가 의지할 곳이 없이되어 권아가타의 모녀에게 와서 함께살게 되었기 때문에 이 세사람의 여교우는 오로지 신앙생활에만 전념하는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여 함께 기도하고 함께 취사하고 함께 전교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이같은 시기에 기해교난(1839)이 일어나자 그해 6월7일 밤중에 갑자기 포졸들이 그녀들의 집에 들이닥쳐 집안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었는데 권아가타의 모친은 일차 신문이 끝난후 포청으로 보내고 권아가타와 이아가타와 어린종은 사관청에 구류시켜 두었다. 이때 배교자 김여상이 두아가타에게 와서 갖은 말로 이 여인들을 유혹하면서 빠져 도망하자고 꾀었으나 권아가타가 준절히 꾸짖어 물리쳤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포교가 그녀의 젊음과 미모를 아까와하여 그녀를 풀어주고 도망가게 해주었는데 결국 이사건이탄로가 나서 포장이 파직되고 수직하였던 군졸이 하나는 사형당하고 둘은 귀양가게되니 사건이 크게일어나 권아가타 모친의 형벌이 심하게되었다. 이사건으로 다른 여교우들도 잡히게되었다. 이때 권아가타는 다른 교우집에 피신하고 여종은 시골 그어머니에게 보냈는데 포졸들이 그여종을 찾아 권아가타 도망간곳을 물어 알아서 마침내 권아가타는 다시체포되고 말았다. 이리하여 다시 체포된 그녀는 온갖혹형과 신문을 당하였으나 끝내 신앙을 지키면서 배교하지않았다.
다시 그녀는 형조로 보내어져 삼차에 걸쳐 형문하여 엄한 곤장형을 받고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녀가 사형선고를 받은후 한 교우에게 옥중서간을 썼는데 대단한 열심과 순교할 간절한 원의와 박해를 잘 극복할수 있는 간곡한말과 크게 회심하는 언사가표현되었기때문에이서간을 보고 듣는 교우들이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한다.
마침내 권아가타는 사술(邪述)에 빠진 요부라는 죄목으로 참수형이 언도되어 1840년 1월31일(음력、12월27일)에 당고개에서 참수되어 순교하니 이때 그녀의 나이2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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