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그는 속절없이 황량한 가슴에 그녀에 대한 그끄름같은 기대를 지피며 이윽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에게 제대증을 준 부대의 정문을 돌아보며 마음속으로 굳게 작별을 고하고 애써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세워타고 D시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는 며칠전에 그녀와 만나 밤을 함께 하였었던 그 여관으로 발길을 향하였다. 그는 그 거짓말 같은 밤이 자꾸 머리에 무겁게 덮여서 걸음을 멈추곤 하였다. 그는 그날의 그 밤을 참혹한 혼돈의 밤이라고 생각하였다.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하리라. 그 진실과 거짓의 완벽한 부조화의 밤을. 허황한 새벽、그 배반의 아침을 밤마다 새벽마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사랑을 하는 밤에도….
그는 자신이 그녀를 증오하고 저주하지는 않는 달지라도 차마 그럴수 없고 그러고 싶지않은 마음속에서도 그날의 뼈아픈 밤은 정녕 잊지못할것 같았다. 그 허황한 새벽의 아픔을 가슴속에서 영영 지워버릴수가 없을것 같았다. 그녀를 결코 잊지못하는 한 그 밤과 새벽도、그 여관의 방도 절대로 망각의 어둠속으로 내몰아버리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그 여관으로 발길을 향하는 것일까?
그는 황량한 마음 속에서도 그녀가 어쩌면 혹 그여관에 돌아와 있을 지도몰라…그녀와 다시 만날지모른다는 얄망스런 기대가 끄름같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이었다. 그는 그 얄망한 기대의 그름을 오래、아주 오래、어쩌면 죽는 날까지 떨어내지 못하리라는 두려운 생각도 그때하였다.
하여튼 참으로 혼란하였다. 그는 혼란한 마음을 애써 가누며 마침내 그 여관으로 들어갔다. 마루앞에 한켤레 있는 여자 구두를 보고 가슴이 미묘히 울렁거림을 키우며、그리고 그는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없었다.
다만 텅빈 방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 그 얄망스런 기대의 끄름은 여전히 남았다. 그것은 또한 짙은 애울함으로 계속해서 그의 가슴에 남을 것이었다.
그는 선물을 주어 그 방을 잡아놓은 다음 여관을 나왔다. 그리고 2년전 그녀와 만나 정을 맺고 키웠던、그녀가 있었던 술집으로 갔다. 그의 수중에는 다행히도 수천 원의 돈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고맙게도 그의 호주머니에 만여 원의 돈을 남겨 놓았던 것이었다.
그는 술집안의 풍경이 2년전 그때와 다름없음을 보고 야릇한 다행스러움과 안도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좀더 짙은 애울함이었다. 그는 그녀와 처음 만나 술을 마셨던 자리도 그대로 있음을 보았다. 그녀의 적당히 취해서 한결 예뻐진 얼굴이 아슴히 떠오르는 듯하고、그의 서러운 기분에 맞추어 어머니 아버지 한도 많은 세상바닥에 왜 아련히 들려오는듯 하였다.
기섭은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술을 청하였다. 기섭이 홀로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을때 안으로부터 나온 술집 여주인이 기섭을 알아보고 반색을 하였다. 그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웬지 모를 참으로 애울한 반가움이 그의 가슴을 뒤덮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섭이 별다른 내색없이 그녀 신경숙에 대해 묻자、
『걔가 이 집을 떠난 지가 1년이 넘었는데、지금 어느 하늘 밑에 있는지 알게 뭐요』하고 술집 여주인은 시큰둥한 소리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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