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라
이 놀라운 신비! 어제까지의 얼룩은
마알갛게 씻겨지고
하얀 눈, 신부의 정결을 휘감은 면사포같이,
성숙의 문턱에서 신부가 던지는 상아빛 난초 부케로
눈 위에 빛나는 아침 햇살을 보라.
자, 이젠 문을 열어 젖히자
화롯가의 석 자 남짓 안식과
서너평 실내의 안온함에 미련 두지 말고
길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모든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
예감이 뭉그적거림을 떨치네
새해 첫날은 누군가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아브라함처럼
이사악처럼
야곱처럼
청둥오리가 날아온 하늘길,
아니, 힘겹고 추위에 떨 싸락눈길일지라도
서로 부추겨서 부축해
드높고 먼길 바라 훨훨 날자꾸나.
어떤 사람에겐 한 대접의 샘물,
깊이 모를 안타까움에는 동이째 충만이 넘칠
지금이 바로 약속의 시간이지 않느냐.
시/ 신중신(다니엘)
▲1941년 경남 거창 출생
▲62년 「사상계 신인 문학상」당선으로 등단
▲시집-「투창」「낮은 목소리」「바이칼호에 와서」「카프카의 집」「응답시편」등
▲대한민국 문학상, 한국시협상, 가톨릭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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