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환 추기경
가톨릭대학교 김수환추기경연구소(소장 고준석 신부), 맑고향기롭게(이사장 현장 스님), 대화문화아카데미(원장 강대인)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강원용 목사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보고 뜻을 기리는 ‘참 종교인이 바라본 평화-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법정 스님과의 대화’ 행사를 6월 30일 서울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열었다.
▲ 법정 스님
유니온 신학교 현경 교수 사회로 진행된 2부 ‘평화를 위한 종교간 어울림’ 대담에서는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도법 스님, 서울대교구 복음화사목국 차장 양해룡 신부, 기독자교수협의회 이정배 교수, 원불교 중앙중도훈련원장 이선종 교무가 참석해 이 시대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보고, 참 평화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 김원용 목사
이날 행사에서는 세 사람의 생전 모습을 담은 동영상 상영과 사진 전시, 축하 무용공연 등이 함께 열렸으며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 등 교회 안팎 관계자를 비롯해 각 종단을 아우르는 500여 명이 행사에 참석했다.
다음은 송월주 스님, 김성수 대주교, 최종태 교수의 발표 내용 요약.
■ 우리 모두 살아있는 사랑과 자비가 되도록-고(故) 강원용 목사와의 만남
- 송월주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함께일하는재단 이사장)
“종교간 대화로 반목·대립 치유에 앞장”
▲ 송월주 스님
특히 오해와 불신이 불가피한 다종교사회에서 종교끼리 상호 간 이해하고 협력하는 기반을 다진 분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사명은 세상을 기독교화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화하는데 있다. 하나님은 크리스천이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된 것”이라는 생전의 육성이 새삼 귓전을 울립니다.
교단의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교리적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고 진보적인 안목으로 민중을 선도하고 민족의 장래에 빛을 던져주셨습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등 6개 종교 지도자가 얼굴을 마주하고 한데 모여 종교 간의 화합과 우리 사회의 평화를 더불어 고민하면서 세상에 모범을 보였습니다. 고인의 생애에서 불교의 상생과 관용의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앙인 이전에 참다운 인간을 고민했던 강 목사님의 종교관은 ‘축자영감설’을 지양하고 ‘목적영감설’을 추구한 점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성경의 문맥과 함의를 무시한 채 지나치게 자구에 매달리는 경직된 해석에 함몰돼선 안 되며 성경의 무오류를 믿는다면 무오류를 믿는 사람답게 삶과 행실에서 청정하고 올곧은 진리가 매순간 현실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화합과 평화의 실현을 위협하는 무지와 편견에 맞서 빈들에서 외친 강원용 목사의 목소리는 우리의 목소리가 되어야 하며 생동하는 목소리가 돼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종교의 길이요 인간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며
- 김성수 대주교(대한성공회·푸르메재단 이사장)
“아픔·슬픔 있는 곳에 늘 함께한 분”
▲ 김성수 대주교
그분은 참 거침없는 분이셨습니다. 당신 스스로가 위로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셨습니다. 남들에게는 아주 보잘 것 없는 곳이라도, 바로 그곳이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라며 절대 망설임이 없으셨습니다. 아무리 큰 세력이라도 잘못된 일은 잘못이라고 큰소리로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 분은 종교를 넘어서는 분이셨고, 성공회에도 큰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1969년 11월 성공회 천주교 일치위원회에서 공동번역 성서 문제와 신학자 교류 문제를 놓고 회의를 벌일 때 그 분을 처음 만났습니다. 또 1973년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일치와 세계평화를 위한 기도회’에도, 1990년 성공회 선교 100주년 행사 때에도, 1993년 제가 초대 관구장 대주교로 취임할 때에도 몸소 찾아주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천주교라는 교단을 넘어 우리 모두의 친구였고, 우리 모두의 사제였고, 주교였으며 추기경이었습니다.
그분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우리는 아픔과 슬픔, 상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위로가 돼야 할 것입니다. 또 교단과 종교의 벽을 넘어서 서로 교류하고 친교함으로써 이 사회에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보여주신 삶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 관음상으로 해서 생긴 법정 스님 이야기
- 최종태 교수(서울대 명예교수·김종영미술관 관장)
“세상에 ‘희망’이란 큰 선물 남겨”
▲ 최종태 교수
법정 스님은 책을 많이 읽으셔서 말하기가 편했습니다. 여러 방면의 책들을 보셨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해도 불편한 점이 없었습니다. 스님은 글을 잘 쓰셨고, 독특한 문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쓰신 글은 남녀노소 무식유식을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잘 읽힙니다. 정신의 매력이 있으면 글의 매력도 있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에서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예술과 종교가 같지는 않지만 또 별로 다를 것도 없습니다. 한 해라는 시차를 두고 나의 종교의 길 위의 스승이었던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스님 두 분 다 여의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기댈 데 없이, 김수환 추기경님 말씀대로 “하느님하고 놀 때”인가 싶습니다.
두 분의 장례예절 모습은 세속의 일과 달랐습니다. 그분들이 한평생 사신 것처럼 꽃 한 송이 없는 명동이고 꽃 한 송이 없는 길상사였습니다. 깨끗해서 좋았습니다.
사회가 심난할 때마다 두 분이 생각나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두 분의 죽음을 생각하면 죽음 저 너머에 무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끝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죽음을 초월하는 여유, 승리라 할까요. 죽음이란 누구나가 통과해야 하는 관문입니다. 두 분은 가시면서 세상에다 ‘희망’이란 큰 선물을 놓고 가셨습니다. 명동성당에서 또 길상사에서 끝이 안 보였던 긴 조문행렬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풍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