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가들이 말하기를 우리 인간은 ‘지속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 속에 있는 존재’라고 한다. 독일 출신으로 40여 년 동안 생사학(生死學)을 필생의 과제로 연구하고 보급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온 세계적인 학자 알폰스 데켄 신부(일본 조지대학 교수)는 상실과 죽음과 사별의 슬픔이 인간의 가장 귀중한 삶의 질을 발달시키는 기회라고 말했다. 또 이인복 교수는 죽음은 ‘인생의 가치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완성시키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분명히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말들이다. 죽음의 경험에 창조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삶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흔히 죽음은 삶의 단절 현상으로 인식된다. 과연 죽음은 삶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가? 죽음 자체는 삶의 전제 조건으로서 하나의 전체 생명 속에 포괄된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생명이 종식되는 단절 현상이 아니라 삶과의 연결고리를 가진 채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은 동전처럼 하나의 대상이 갖고 있는 양면성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어서 죽음의 신비를 깨달을 때에 비로소 삶의 가치가 명료해진다고 말할 수 있겠다.
죽음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대표적 인물이 있다. 엘리자벳 퀴불러 로스이다. 그는 1926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한 후 다시 미국에 건너가서 수많은 임종 환자를 돌봤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주로 암에 걸린 중환자들은 대체로 다섯 가지 과정을 거쳐 임종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의 연구에 의한 다섯 가지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정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설마 나에게 죽음이 다가왔겠는가”라는 반응을 보인다. 우리가 죽음에 부딪힐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게 되는 것이므로 죽어가는 과정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둘째, 분노의 단계다. “왜 내가 죽어야 되는가”란 거부 반응이 강하게 일어나면서 분노를 느끼거나 유감으로 생각하는 등 복잡한 감정과 질문들에 부딪히게 된다. 셋째, 타협의 단계다. “몇 달만 더 살게 해 준다면” 혹은 “아들 결혼할 때까지만 살게 해주신다면, 하느님! 성당에 잘 나가고 좋은 일도 많이 하겠습니다” 등의 약속을 한다. 대개 이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은 자기가 인간관계에서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넷째, 우울증에 빠지는 단계다. 더 이상 회복의 가능성이 없다고 느낄 때 생기는 감정이다. 다섯 번째는 이제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단계다. 분노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최후를 여유 있게 바라보게 된다. 알폰스 데켄 신부는 여기에 한 단계를 더 추가한다. 그는 여섯 번째 단계로 기대와 소망의 단계를 말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기보다 영원한 생명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과 기대를 갖게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여섯 번째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