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이른 새벽, 나지막이 성가를 부르며 목을 푼다. 늘 갑작스레 생기는 장례미사. 예정에 없던 미사였지만 30여 명의 단원들이 함께했다.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영혼을 위한 축복의 노래, 남은 유족들을 위한 위로의 노래를 그 어느 때보다 정성껏 봉헌한다.
새벽미사 후엔 흰색 성가대복을 차려입고 또다시 성당을 향해 잰걸음으로 나섰다. 매달 첫 토요일 오전 10시엔 토요신심미사 겸 임신부 축복미사 성가와 특송 봉헌이 있기 때문이다.
수원교구 분당 성마르코본당(주임 장동주 신부) 그라시아 성가대(단장 신향순, 지휘 이연희)는 평균 나이 75세 어르신들로 구성된 이른바 실버성가대다.
눈을 감고 들으면 어르신들만이 내는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소리와 정확한 음을 표현한다. 특송 선곡도 다양해 신자들이 더욱 거룩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날 미사 후에도 신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격려와 감사의 박수를 성가대에 보냈다.
성가대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이다. 성경공부를 해오던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합창을 좋아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특히 이듬해 지휘자 이연희(가타리나·59)씨가 봉사에 나서며 보다 탄탄한 운영체계를 세우고 합창소리도 다듬어가기 시작했다. 8년째 한 주도 빠짐없이 합창 지도에 나서고 있는 이씨는 “단원들 모두 고령의 어르신들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만큼 성실하고 열심한 모습으로 성가대에 동참하신다”며 “무엇보다 겸손하게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큰 모범”이라고 전했다.
현재 성가대는 매월 토요신심미사와 평일미사 전례봉사에 나선다. 해마다 새로 서품된 사제들이 본당을 방문, 첫 미사를 집전할 때도 성가봉사 일선에 서는 것은 그라시아 성가대 몫이다. 장례미사 봉헌 또한 단원들이 큰 소명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활동 중 하나다. 단원들은 간접선교를 위해서도 지속해야 할 활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처음엔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동참했던 단원들도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큰 자부심을 갖고 활동에 나서게 됐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키워가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개개인마다 건강을 되찾은 것은 물론 긍정적인 삶을 통해 각 가정성화에 힘을 얻는 것도 성가대 활동을 통해 선물 받은 열매다.
성가대 신향순(아녜스·73) 단장은 “성가와 함께하는 삶을 통해 항상 즐겁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며, 서로의 신앙을 더욱 성숙시키는 데에도 큰 도움을 얻고 있다”며 “특히 성가를 통한 기도에 감명 받은 신자들이 하나둘씩 성당을 찾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본당에서도 어르신 사목의 대안으로 성가대 활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단원들은 특히 본당에서 지원하는 정기적인 피정과 성지순례 등을 통해 신심을 더욱 다져가며 활동에 나설 수 있었다.
본당 주임 장동주 신부는 “사회와 교회 내 고령화 흐름에 비해 어르신 사목에 대한 체계는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단순히 취미활동이 아니라 성가를 통한 봉사에 힘쓰고 있는 어르신들의 활동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어르신들의 영육간 건강을 유지하고 교회의 힘이 되길 바란다”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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