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언제 끝날지 궁금하면 일기 예보를 듣습니다. 요즘 서민들의 형편이 어려운데 언제쯤 경기가 좋아질지 알고 싶으면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렇듯 오늘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대부분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집니다.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더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과학의 시대에도 종교가 갖는 설득력과 매력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왜냐고요? 미래에 대한 기대가 많을수록 불확실성이 가져다주는 공포가 더 커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연 내가 언제 취직할 수 있을까, 또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내가 잘못되면 내 가족의 앞날은 누가 책임지지? 혹은 엄청난 재앙으로 온 나라가 쑥밭이 되는 걸 보면서, 과연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분도 있겠지요. 한마디로 말해서 과학적인 미래 예측이 유용한 경우도 많지만, 막막한 시간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인간의 실존적인 정황과 관련해서 보자면 미래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종교가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고대 중국의 주나라를 이상적인 시공간으로 여기고, 현재의 세태를 비추어 보는 거울로 삼았습니다. 즉 과거는 현재를 평가하는 잣대의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와 미래는 과거의 반복으로 충분하였습니다. 이렇게 갈등과 고통이 없었던 이상적인 과거를 동경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일이었습니다. 황금시대나 에덴동산, 황금의 땅 엘도라도 등은 과거의 어느 시점을 낙원으로 묘사하는 사고방식과 결부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각자 자신들이 갖고 있던 희망을 담아서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을 빚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미래의 청사진들을 제시합니다. 어떤 이들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은 온통 악에 물들어 모든 것이 썩었으니 다 무너뜨려 버리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메시아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미래는 이상적인 지도자가 다스리는 천년왕국이라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또는 불확실한 미래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하여 무질서가 완전히 제거된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기도 합니다. 토마스 무어 성인이 쓴 책 이름을 빌려와서 흔히 이것을 유토피아라고 일컫습니다. 중세 수도원의 조화로운 생활을 모델로 하였기 때문에 질서를 극대화한 모습이 바로 유토피아입니다. 즉 무질서를 초래할 위험들이 원천적으로 제거되고 다툼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입니다. 대신에 인간적인 약점이나 사소한 일탈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유토피아의 미래는 자칫하면 악몽으로 돌변할 소지가 많습니다.
낙원의 황금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치든, 악에 물든 현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자고 목청을 높이든, 아니면 우리끼리 모여서 이상적인 질서에 따라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자고 속삭이든, 아직 겪어보지도 못한 미래를 담보로 잡고 현재를 희생하라고 강요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미래 때문에 소중한 현재를 내팽개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요즘의 세태를 빗댄다면 조금 더 풍족한 미래를 장만하겠다며 돈 버는 일에 몰두하다보니 한창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학원과 편의점 사이에 방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류의 미래, 즉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은유와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그리스도의 강생과 지상교회의 성립에서부터 이미 종말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재를 도외시한 채 별도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가톨릭교회의 정신과 맞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처럼 미래는 기다림의 형태로 현존하는 현재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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