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IMF 한파가 몰아치기 직전 일단의 수녀님들과 성지순례를 할 기회가 있었다. 에집트에서 시작한 성지순례는 이스라엘을 거쳐 로마 불란서 4개국 순례로 마감되는 일정이었는데, 이 순례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던 진복팔단 성당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그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성서를 읽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 중 한 부분이 바로 진복팔단 부분이었다.
『마음이 가난한…』으로 시작하는 이 부분은 어느 순간 이해디는 듯도 하다가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성지순례 중 진복팔단 성당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갈릴래아 호수를 바라보면서 가이드가 읽어주는 진복팔단의 내용을 들을 때 뭔가 모르는 가슴 찡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이런 느낌이었다. 그래 맞다. 여리가면 돈도 풍요도 명예도 이런 자연 속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라는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똑같은 내용을 각박한 한국 땅이나, 예루살렘에서 들었다면 아마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갈릴래아 지역이었기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란 말로 시작되는 그 말의 의미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후 귀국해서 그때의 감동을 몇 번 떠올려 보려했지만 좀처럼 그때의 느낌을 받을 수 없음이 매우 안타까웠다.
때문에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고 그분의 말씀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날 때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갈릴래아 지역을 다시 한번 순례하고 싶고, 아마 다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거닐게 된다면 『아 갈릴래아여』로 시작되는 한편의 시로 그 느낌을 전하고 싶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40일간의 광야에서의 단식 후 갈릴래아에서 첫 복음을 전한 활동의 요약과 나자렛 회당에서의 복음선포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는 성서를 읽으면서 흔히 성서의 지명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물론 보편적인 교회를 지향하는 우리가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갈리래아라는 이 지역만은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갈릴래아는 예수님의 삶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갈릴래아는 이스라엘의 북부지역으로써 갈릴래아 호수 서부지역을 일컫는 지역이었는데, 예수님의 삶은 이곳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사셨고 이곳에서 성장하셨을 뿐 아니라 복음 선포 활동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수행하셨다.
즉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 첫 복음이 선포된 곳도 이곳이고, 공생활의 대부분의 활동 무대도 이곳이고, 부활 후 발현의 장소도, 부활 후 40일간의 활동도 갈릴래아에서 주로 이루어졌으며,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도 바로 갈릴래아의 한 산이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예수님의 삶에서 갈릴래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릴래아는 과연 어떤 지역이었을까?
이 지역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당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종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과 비교해보면 이 지역이 가지는 의미를 조금은 파악할 수 있다. 이 지역은 먼저 종교적으로 차별을 받고 천시되던 지역이었다. 이 갈릴래아 지역은 예수님 시대에 「이방인들의 갈릴래아」(마태 4, 15)로 불리고 있었다. 이 말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 혹은 이방인의 피가 섞인 혼혈인들이 사는 곳이라는 무시와 천시의 뜻이 포함된 말이었다.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자면 옛날 함경도 사람, 또는 전라도 사람 등으로 지역적 차별을 받고 무시되고 있던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또한 정치 사회적으로도 매우 소외된 지역이었다. 모든 것이 예루살렘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상류층과 기득권 층은 주로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기에 이 지역은 정치 사회적으로도 변방의 위치에 머물렀고, 교육적으로도 무지한 백성들이 사는 지역,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면서 권력으로부터 착취를 당하고, 노동의 결과에서 소외된 가난의 지역이 바로 갈릴래아 지역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소외되고 천시 받는 무지렁이 백성들이 사는 곳,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들의 삶의 장소가 바로 갈리래아 지역이었다.
그러기에 가난한 이들과 묶은 이들 그리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은총의 해를 선포해야할 사명을 가지신 그분이 복음 선포의 시작과 마지막 장소로 갈릴래아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결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교회, 아니 예수님의 삶을 뒤따라야 할 우리가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진지하게 질문해야 할 하나의 숙제가 있다면 바로 복음 선포 현장이 되어야 할 오늘날의 갈릴래아가 어디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진정 내가 순례해야 할 나의 갈릴래아는 어디일까 자문해 보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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