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사 안에서의 위치
1) 샤를르 드 푸꼬는 복음성서에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 정신 뿐 아니라 실제적 측면에서까지 철저히 닮고 본받으려 하였다.
그가 강조한 그리스도를 본받음이란 사람이 되신 느님, 예수 그리스도께 동일화되는 과정을 뜻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단순히 관상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 존재를 닮아 결국 사랑 받는 존재와 하나로 융화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처럼, 그분과 더불어, 그분을 위해서 생활하는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대화의 형식으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의 규칙은 나를 따르는 것이다. 너는 내가 행했을 것을 실천하라. 매사에서 이렇게 스스로 물어라. 「우리 주님께서는 이 같은 경우에 어떻게 행하셨을가? 그리고 그 결론을 실천에 옮겨라. 이것이 너에게 유일하고 절대적인 규칙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2) 푸꼬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생활화하였다.
그는 성서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잘 인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았지만, 성찬의 식탁에서 뿐 아니라 말씀의 식탁에서 영적 양식 섭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성서의 말씀을 적으면서 묵상했으며 특히 복음서의 묵상을 소중히 여겼다. 그가 초안한 규칙서를 보면 성서를 형제들의 집단 성당 감실 옆에 언제나 현시할 것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요약을 늘 품에 간직하고 다녔다.
3) 푸꼬는 늘 「꼴지의 자리」를 선택하면서 지나칠 만큼 엄격한 수덕생활을 했지만 수덕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며 실천하였다.
푸꼬는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 안에서 성성은 사랑의 완성이고 사랑이 하느님께 일치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 안에 포함시킨다. 그가 십자가에 나타난 가난, 굴욕, 천대받음 등 고행 수덕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유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본받기 위해서였다. 그의 글들 안에서 고행들을 그 자체로 찬양하는 것은 한 구절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악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최상의 가치로 부여하셨기에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성은 사랑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사랑하시고 그 사랑에 인간은 응답해야 한다. 즉 성성은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이지만 인간 편의 협조가 요청되는 것이다. 인간의 협조란 성화시켜 주시는 성령께 개방하며 순응하는 자세이다. 여기에 수덕이 필수 조건이다. 그리스도인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봉헌하는 데 있기 때문에 이기적인 자신의 뜻으로부터 떠나는 부단한 노고가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이같이 뒷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재확인 될, 수덕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푸꼬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4) 푸꼬는 새로운 선교방법에 빛을 주었다.
가그 베니아베스에 있을 때에는 몇 명의 노예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주기도 했지만 그는 전통적 선교사의 사도직에 부르심을 받지 않았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는 회교도들에게 복음을 심어 주려면 먼저 그들과 우정을 맺어야 하고 생활의 증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침묵 중에 드러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와 같은 사도직을 「선량함의 사도직」이라 했다.
푸꼬는 그들과 더욱 친밀히 사귀기 위해 의복, 음식, 생활 방식까지도 그들의 것을 따르려 했으며 그들의 언어, 역사, 전통, 민속 등을 열심히 연구했다. 그는 복음을 선포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문화와 상황을 파악하면서 끊임없이 토착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말로써가 아니라 생활로써 복음선포를 수행했다. 실로 그는 회교도들과 친해지는 방법, 그들의 편견적 태도를 애덕으로 극복하는 법, 그리스도를 싫어하는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들을 축복하게 하여 그들을 조금씩 그 진리로 인도하는 방법을 이론이나 실제에 있어서 체험으로 터득한 최고의 권위자이다.
5) 푸꼬의 수도회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결실을 이루었다.
일반적으로 수도원의 설립자들을 생존시에 이미 여러 수도원들을 세워 다수의 회원들을 확보했던 데 비해 푸꼬는 그의 생존시에 한 사람의 회원도 얻을 수 없었다. 그는「작은 형제회」와 「작은 자매회」창립을 준비하면서 동료들을 얻기 위하여 기도중에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엿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의 자세는 바뀌었다. 기도화 희생, 목숨까지 바치면서 하느님의 때를 기다려야 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한 그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어 온 한 구절의 성서말씀이 있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며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푸꼬는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은 하나의 밀알이었다. 「예수의 작은 형제회」와 「예수 성심의 작은 자매회」가 1933년 설립되었고 1939년에 예수의 작은 자매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푸꼬의 정신을 따르는 많은 형제, 자매들이 재속회를 이루었다. 한국에도 1955년에 예수의 작은 자매회가, 1969년에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가 들어왔다. 1984년엔 평신도 재속회가 설립되어 그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6) 푸꼬의 수도회의 정신과 사명은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여러 상황의 선교 지역에서 성체를 지속적으로 흠숭하며 성체성사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서술한다. 『제대와 감실을 불신자들 가운데로 가지고 가서 예수께서 30년간 조용히 나자렛에서 세상을 성화시키셨듯이 우리는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저들을 성화시킨다.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현존 즉 거룩한 제물로 희생되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모시고 감으로써, 최선을 다 해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성심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가지고 감으로써 그 일을 효과적으로 행한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전하는 직분에로 불리지 않았으니 그냥 조용히 찬미하고 선교한다』.
푸꼬는 선교활동을 장려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 인도하고자 한 이들 가운데 함께 머물러 있는 소명일 뿐이다. 새로운 형식의 관상 기도가 도입되었는데 이것은 세속에서 사는 관상 생활로서 침묵의 수단으로 「함께 있음」을 의사 소통 방법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작은 형제, 자매 회원들이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빈곤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가난을 형제애의 증거로 삼는다. 이것이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복음서의 가르침을 증거하는 그들의 사도직이다.
7) 푸꼬는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본받는 「복음적 실재론」으로서 그의 삶과 영적 메시지는 오늘 구체적인 영성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요한 크리소스토모, 아빌라의 데레사, 십자가의 요한 등 영성의 대가들의 저서를 깊이 탐구하고 영향을 받아 거기서 발견한 교리나 조언을 자신의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려고 애썼다. 그가 교의적 측면에서 새로이 공헌한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는 학문적으로 충분히 고려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인간 예수 그리그도를 깊이 깨닫고 발견했다. 그의 내면 세계에서 체험된 「숨어사시던 나자렛 예수님」에 대한 발견은 학문적 분야에서 보다 일상적 생활에서 더욱 풍요로운 영적 결실을 맺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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