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미국 플로리다 반도의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통신방송용 인공위성, 무궁화 2호 발사를 위해 한국 과학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학자들이 발사의 성공을 위해 통돼지 바비큐를 사서 고사를 지냈답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다루는 과학자들이 과연 왜 그랬을까요? 고사를 지내야만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요?
아마 그것을 진짜 믿는다기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생각이었을 테지요.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나 봅니다. 이처럼 종교와 과학은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마주치기도 합니다. 특히 끝을 알지 못하는 막막한 우주를 상상하면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상념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고전역학을 체계화한 뉴턴도 고대 연금술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핼리 혜성의 궤도를 예측하여 스승인 뉴턴의 이론을 입증한 핼리 역시 지구를 러시아 인형처럼 여러 겹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우주의 기원을 태초에 있었던 대폭발로 설명하는 현대 천체물리학의 빅뱅 이론도 순전히 과학적 데이터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상상력의 요소가 개입해있지요. 이처럼 상상력은 종교나 문학의 영역인 것 같지만, 과학 이론의 수립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말하자면 종교와 과학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세상, 우주를 성찰하고 묘사하는 상상의 지도들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우주와 인간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외계 문명을 탐사하러 간 주인공은 목적지에서 노년에 접어든 자기 자신을 만납니다. 우주를 향한 끝없는 호기심이 도달하는 지점은 결국 무한한 우주 속에서 먼지와도 같은 존재인 인간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일까요? 또는 영화 ‘콘택트’는 어릴 적부터 언제나 누군가와 교신하기 위해서 전파를 수신하던 주인공이 외계의 존재와 접촉하면서 인간이 우주 속에서 미아처럼 홀로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현대의 대중문화에서 발견하는 우주 속의 인간에 대한 상상들을 아득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여행자 또는 나그네의 이미지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라틴어로 암불란스(ambulans)는 ‘왔다 갔다 함, 걸어 다님, 산책함, 여행함’을 뜻합니다. 의료 장비를 싣고 돌아다니면서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이동식 병원인 앰뷸런스도 여기에서 온 말입니다. 호모 암불란스라고 하면 인간이란 끝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나그네처럼 왔다 가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기약할 수 없는 미래 때문에 현재를 희생하지 말자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에 못 박혀서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향락만을 추구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집착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가 가는 나그네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면 어떨까요.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갈 곳은 잘 알지 않습니까? 지상에서의 삶을 무사히 잘 끝내고 마침내 돌아갈 곳 말입니다.
‘무궁무진세’라는 가톨릭성가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 가사 가운데 ‘찬류(竄流)세상’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은 유배형을 받아 잠시 귀양살이를 하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돌아갈 곳이란 영원한 행복이 기다리는 하느님 나라이겠지요. ‘하숙생’이라는 노랫말처럼 나그네와 같이 잠시 살다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니 미련일랑 두지 말아야죠. 호모 암불란스의 존재가 구원을 얻는 길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물이 흐르듯이 살아가는 마음가짐에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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