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ㅈ씨, 그는 다른 동료들보다 먼저 눈을 뜬다. 동이 트려면 아직도 먼 쇠창살 너머 어둠 속에서 새벽을 맞으며 동료들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자리에 누워 성호를 긋는다.
지난 96년 영세와 함께 어느덧 맛들여진 삶. 여름이고 겨울이고 그치지 않는 목욕재계,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잇는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기도로 ㅈ씨의 하루는 늘 한결같다.
「피해자의 영혼이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해주소서. 그 가족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주소서…」
애절한 기도에 빠져들라치면 어느덧 눈가에 고이고 마는 눈물. 몇 년째 해오고 있는 기도지만 ㅈ씨에게는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일이다. 구치소 안에서 「최고수」로 불리는 ㅈ씨, 최고 형량을 선고받았기도 하지만 가장 너그러운 「큰 어른」구실을 해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새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립니다. 용기를 잃지 않고 기도에 잠길 수 있고 조그만 믿음의 열매를 동료 재소자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ㅈ씨에게 하루하루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기워 갚는 소중한 기회의 시간이다. 그러나 그는 끔찍한 그 일이 있고 6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의 가족들의 아픔을 다시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만 내심은 자신의 잘못을 충분히 보속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사형선고를 받는 순간 과거의 저는 죽어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그는 매일매일 새로운 죽음을 맞는다. 하루가 저물 즈음이면 또 하루의 목숨을 연장받았다는 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깨우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ㄱ씨(당시 27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생활을 하다 97년 세밑 갑작스럽게 진행된 사형으로 삶을 접은 사형수. ㄱ씨를 지켜보아 온 이들은 그가 틀림없이 하느님 품으로 안겼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사형집행이 있던 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피해자의 가족들마저 정부의 사형집행에 거세게 항의하며 울부짖었다.
사형선고 후 사회와 주위에 대한 분노로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던 ㄱ씨는 5, 6개월을 지나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영세를 받았다. 조그만 체구에 악의라곤 없는 얼굴의 그를 사형수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새로 들어오는 재소자들의 발을 씻겨주며 그들의 아픔마저 자신의 것인 양 살았던 ㄱ씨. 생전에 그는 노동이 없는 단조로운 일상을 한탄했다. 사형이 집행되기까지는 미결수이기에 노동형이 부과되지 않는 까닭이었다. 자신의 노동을 통해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조그만 보속이라도 하길 소원했던 그는 사후에 장기를 기증해 소망의 한부분을 이뤘다.
사형이 집행되던 날, 감사의 눈물과 이별을 주고받는 사형수와 수녀를 지켜보던 이들은 사형제도의 비인간성을 새롭게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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