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출발한 수원교구 제11기 청년도보성지순례가 16일 오후 2시 교구청에서 총대리 이성효 주교 주례 파견미사 봉헌으로 8박 9일간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67명의 참가자와 24명의 봉사자로 이뤄진 이번 도보성지순례단은 구산성지를 시작으로 양근·여주·죽산·미리내·요당리·남양성모·수리산성지 등 8곳의 성지를 거쳐 교구청에 이르기까지 260.6km를 걸었다.
“군생활보다 힘들었어요.”
(김영권·베드로·27·죽전1동하늘의문본당)
어려운 조건 속에서 순례길을 걸었다. 11년 동안 개최해온 도보성지순례 사상 처음으로 순례기간 중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렸다. 젖은 옷에 몸이 무거웠고 신발에 물이 가득 차 퉁퉁 불은 발로 걸어야 했다. 잠깐이라도 비가 그치는 순간에는 벌레들과의 싸움이 이어졌다. 매일 밤 옷을 빨아 탈수기를 사용해도 아침엔 여전히 젖은 옷을 입고 길을 나서야 했다.
“도보성지순례에 왜 참가했을까? 자기 전에 후회하고 일어나서 또 후회했어요. 힘들어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후회했어요. 그 순간 후회했지만 그래도 걸었어요.”
(이진솔·리디아·20·기안성바오로본당)
13일 미리내성지를 출발해 요당리성지를 거쳐 발안성당으로 가는 길은 도보성지순례 최초로 하루 50km 이상을 걷는 코스였다. 걷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아픈데 건널목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속보!”와 “앞으로 밀착!” 구령은 순례자들을 괴롭혔다. 잠깐의 휴식이 주는 꿀맛 같은 기분도 “출발 5분 전” 구령엔 산산이 무너졌다. 주로 국도변을 걸어야 하는 순례길에서는 안전을 위해 한 줄로 걸어 대화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32만9339걸음. 철저한 고독의 순례였다.
“물집 안 잡히는 체질인 줄 알았어요. 물집 잡히는 게 이런 괴로운 일인 줄 몰랐어요.”
(안수현·프란치스카·26·정자꽃뫼본당)
이미 취침에 들었어야 할 새벽 1시. 양호실의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물집, 근육통, 접질림 등을 치료하는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쩔뚝거리며 순례길에 올랐다. 결국 부상으로 도보순례 불가판정을 받고 마지막까지 걸을 수 없게 된 순례자들도 나왔다. 부상이 없는 순례자들도 고통은 마찬가지였다. 걸을 때마다 전해지는 발바닥의 고통은 순교자들의 고통을 떠오르게 했다.
“다리는 너무 아픈데 묵주기도를 할 때는 아픔이 사라졌어요. 묵주기도를 두세 단 바칠 때 즈음이면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한의회·마르코·24·기안성바오로본당)
순례자들의 손에는 묵주가 들려있었다. 휴식도 약도 해결해주지 못한 고통을 기도가 치유해줬다. 순례자들은 평소에 자주 바치지 않던 아침·저녁기도, 식사전?후 기도, 삼종기도, 묵주기도, 화살기도를 바쳤다. 화살기도 4219회, 묵주기도 4만3594단. 기도는 순례자들의 힘이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시편130,2)라는 도보성지순례 슬로건처럼 순례길은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을 향한 기도로 가득했다.
“주님을 향하여 젊은이답게 함께 걸어가자 우리 모두 함께”
(청년도보성지순례 주제가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힘든 순간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목적지에서 주제가 소리가 들리면 기쁨이 가득 차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졌다. 죽산본당 주임 배명섭 신부의 배려로 죽산성당에서는 대중목욕탕을 통째로 빌려 간이천막샤워 신세를 면하기도 했다. 성지에 도착할 때마다 받는 순례지도조각과 디딤길 도장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무엇보다 완주했을 때의 기쁨은 순례길의 그 어떤 고통도 뛰어넘는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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