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관구와 광주관구의 신자 수를 합친 것과 서울관구 신자수를 견주어 보면 서울 쪽이 더 많다. 그런데 신학교는 대구, 광주 쪽에 두 개가 될 때 서울 쪽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대구신학교가 다시 문을 열 때, 벌써 불균형이 생긴 것이다. 그 불균형을 바꿔 놓은 것이 수원신학교다.
그 다음에 부산신학교가 세워지면서 불균형이 계속됐고, 이번에는 대전에서 (신학교를) 했다. 그래도 양쪽에 세 개, 세 개니까 또 안 된다. 그러자 인천에서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불균형이다.
1980년 추계 주교회의에서 나는 수원에 신학교를 설립하고 싶다는 제의를 했다. 마침내 1982년 5월 주교회의에서 수원신학교의 설립안이 의결됐고, 그 해 8월 수원가톨릭대학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전개하게 됐다.
1984년 3월, 수원신학교의 첫 신입생 48명의 입학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수원신학교는 힘찬 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방한하신 교황님께 본관 건물 머릿돌을 가지고 가서 축성을 받고, 강복장을 받아왔다.
1987년 9월 전체 공정을 끝내고 1988년 5월 6일 수원신학교 준공미사를 봉헌했다. 신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 문제로 좀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신학교를 설립했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러 수원교구의 신부님들이 이만큼 많아졌다.
수원교구 신자가 6만7000명일 때 내가 교구장이 됐는데 지금은 40만 명이다. 우리 수원교구는 신학교를 설립했기 때문에 이만큼 발전을 했다. 그러니까 수원교구는 신학교를 만든 덕분에 앞으로도 무럭무럭 성장할 것이다.
수원신학교는 대구신학교에 이어 제4대 신학교로 설립됐지만 1962년 한국교회 교계제도 설정 이래 20년 만에 교구 단위 지역교회에 최초로 설립된 대신학교이니 이 또한 사제 양성 교육의 새 이정표를 세운 일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때 수원교구에서 신학교를 안 세웠더라면 우리나라 전교는 정말 지지부진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수원신학교의 설립은 내 주교 수행과정에서 가장 빛나는 일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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