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없는 사람들
▲ 포스터.
다리의 초연작인 ‘없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잊혀진 존재들의 이야기, 잊혀진 상처와 잊혀진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 없는 사람들의 질문
▲ 연출을 맡은 가톨릭청년회관 관장 유환민 신부는 연극 ‘없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잊혀진 존재들의 이야기, 잊혀진 상처와 잊혀진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밝혔다.
“이 집에 7000만원이 들어갔는데 2000만원만 받고 나가라고요? 여러분이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TV에서 아프리카 기린 이야기를 봤어요. 초원이 사막화되면서 기린들이 살기가 어려워지자, 수천 만원 하는 장비를 들여 기린을 초원으로 이주시키는 이야기를 보면서 감동 받다가 문득 화가 났어요. 그럼 우린 뭔가요?”
“용역들이 들이닥쳐 순식간에 제가 살던 집을 허물었어요. 제가 그 안에 있었는데도 없는 사람인 듯.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어요…. 이런 게 사는 건가요? 제대로 사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그런 거에 대한 느낌 자체가 없어요. 원래 혼자였지만 이젠 정말 혼자란 생각이 들어요.”
“재개발이 오히려 손해가 된다는 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텐데…. 우린 왜 모든 게 지나간 다음에 알게 될까요?”
없는 사람들은 집을 잃고, 집에 얽힌 추억을 잃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삶에 대한 희망도 잃은 얼굴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은 무얼 하고 있습니까” 하고.
# 다리를 건너 오세요
연극 ‘없는 사람들’은 철거촌 주민 이야기를 닮은 사회극을 넘어선다. 종교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한 복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직접적이면서도 전혀 직접적이란 느낌이 들지 않게, 복음적 가치를 부드럽게 연극 속에 담아냈다. 극중 사제는 십자가 앞에 앉아 “주여, 저는 너무 많은 것을 봤습니다. 죽은 고양이의 시체, 불안과 공포에 떠는 사람들, 머리에 피를 흘리는 사람, 모욕당하고 분노한 얼굴…왜 저에게 이런 것을 보여주십니까? 정말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것입니까? 주여, 정말 어렵습니다”라고 절규한다. 그리고 이내 주님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아들아, 내가 바로 너다. 나는 네가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축복하려면 너의 손이, 말하려면 너의 입술이, 고통 받으려면 너의 몸이, 사랑하려면 너의 마음이, 구원하려면 너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아들아, 나와 함께 있어다오.”
세상의 고통과 상처 한가운데를 지나며 만신창이가 된 우리들에게 “나는 바로 너다”라고 말하는 주님의 음성이 무대 한 가운데서 울려퍼지는데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 속에 복음정신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연극의 시작도 십자가의 등장과 미사 봉헌 장면으로 시작되고, 장례식 풍경 등 곳곳에 종교색이 녹아있는데도 ‘가톨릭’이라는 경계선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날 연극을 관람한 장미린(29?비신자)씨는 “가톨릭 신자인 친구의 초대로 연극을 관람하게 됐는데 가톨릭적이라는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비신자 청년들도 ‘가톨릭’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가톨릭청년회관의 목적이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극은 십자가의 입장으로 시작해, 하늘나라로 간 연희가 십자가와 함께 객석에서 무대로 올라오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처음과 끝, 그리고 극 중간 중간에 십자가는 무대 한 곳에 언제나 말없이 서 있다. 십자가는 무대 중심에서, 또 때로 무대 한쪽에서, ‘없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없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배웅한다. 객석에서 하늘나라로 간 연희와 함께 걸어 나오는 장면에선 ‘예수님께선 언제나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종교는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 있다. ‘세상의 빛이 되라’하신 복음 말씀처럼, 또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다’고 하신 말씀처럼, 다리의 초연작 ‘없는 사람들’은 세상 이야기를 십자가의 품 안에서 조용히 풀어낸다.
‘없는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희망’에 대해서 얘기했다. 강제철거에 저항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연희의 아빠는 딸의 무덤을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저는 제가 잘하고 있다고, 제가 하는 일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뼈아픈 것은 연희에게 ‘희망’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요. 그때도 이렇게 아름다웠을 텐데요.”
‘없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희망’, ‘없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엿보고 싶다면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다리’를 찾아가면 된다. 공연은 7월 31일까지, 평일 저녁 8시, 토요일 오후 3?6시, 일요일 오후 3시에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 펼쳐진다.
※문의 070-8668-5795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www.scyc.or.kr, twitter @cyc_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