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마음은 기도를 부른다.
다른 욕심은 벗어 던지고 오직 생명에 대한 절박함만이 남아있는 병동에는 그래서 순수한 기원과 찬미, 감사가 가득하다.
세상 속에서는 다른 이들과 다름없이 악다구니를 벌이며 살던 이들도 생명의 절대성 앞에서는 오롯이 순수한 염원만을 하늘로 올린다.
가톨리중앙의료원 산하 강남 성모병원과 의정부 성모병원 성당 한켠에는 그들의 기도를 담아 놓은 노트가 한 권 마련돼 있다. 기도노트라 이름지은 여기에는 아픈 이와 이들을 돌보는 이의 간절한 목소리가 한 자 한 자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언제나 주님께 감사하며 찬미 영광 드립니다. 오늘도 무사히 지낼 수 있게 하시어 감사합니다. 며칠만이라도 좋으니 안셀모가 맑은 정신으로 아이들과 가족을 만나게 해 주소서. 이 밤이 샐 때까지 안셀모의 통증이 없게 하소서…』
『많은 것을 바라진 않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도록 주님 도와주소서.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용기와 힘을 주소서』
『더 이상의 풍요로움은 필요치 않고 이대로의 모습으로 늘 감사하겠습니다』
노트를 한 장씩 넘기다보면 가끔 눈물의 흔적이 비쳐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눈물은 무의미하게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닌 절망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는 힘이다.
조막손으로 볼펜을 꾹꾹 눌러 써내려간 어린이의 기도, 병원에서 영영 딸을 떠나 보내야만 했던 아버지의 기도, 맞춤법이 맞지 않는 한 노인의 기도,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모든 의료진과 직원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의 건강을 비는 기도….
강남 성모병원이 96년 처음으로 기도노트를 만든 이후 의정부 성모병원도 97년 7월부터 지금까지 기도노트를 마련해두고 있다. 거의 매일 빠짐없이 써 내려간 기도노트는 두꺼운 대학노트를 벌써 여러 권이다. 의정부 성모병원은 지난해 사순시기에 이 기도들을 묶어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기도.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인간 존재의 문제를 생각하는 그들의 기도는 한걸음 먼저 생명과 신앙의 길로 다가가 있다.
『세상이 싫어지고 사는 것이 버겁습니다. 가족이 짐이 되고 내 자신이 나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여 당신만이 나의 샘이시오니 저에게 구원의 빛을 허락하소서』
『좋으신 주님 우리 아이가 다칠 때도,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께서 함께 하셨음을 믿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아이가 마음속 깊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세요. 그동안 한동안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 갖지 못하고 산 것을 이제야 느끼고 후회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존재의 상실과 위협에 대한 고통을 이겨내고 고통의 의미를 찾아 기도로 봉헌하는 이들, 고통 속에서 이들이 발견한 것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새로운 생명과 부활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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