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4일까지 1년여 동안 이어질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기간의 시작에 맞춰 2월 2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7층 대강당에서 열린 기념 심포지엄은 한국교회사의 도정에 또 하나의 새로운 물꼬를 튼 장이었다.
이날 행사는 한국교회의 몫으로 남겨진 1801년 신유년 순교선조들의 현양과 정신계승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기존의 각 교구나 단체 차원에서 파편적으로 진행돼오던 순교자 시복시성추진운동과 현양운동이 이 운동을 추진하는 조직들을 보유한 제한된 자료와 역량을 활동의 1차적 근거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진행된 심포지엄은 전교구 차원의 통합적 시복시성추진운동이 필요함을 재확인 시켰다.
이와 함께 기존의 시복시성 및 현양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올바른 순교자 현양을 위해서는 신자 기층에서부터 공감대를 마련하고 역량을 결집시켜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 가운데 1801년을 전후한 신유박해 관련자들을 둘러싼 종합적 통계자료가 최초로 집대성돼 모습을 선보인 것은 한구교회가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즈음해 건져낸 또 하나의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측 자료는 물론 관변측 자료까지 총망라된 이 자룐느 앞으로 저자책(CD) 형태로 간행돼 교회사연구의 기초자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이 자료는 순교자들의 도피·신문과정 등 삶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게 함으로써 기존의 죽음을 중심으로 한 순교자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올바른 현양운동의 토대를 마련해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날 심포지엄이 공감대를 도출해낸 시복시성추진 과정의 정차적 엄격성, 역사용어 사용의 적합성 등에 관한 논의는 교회사 연구의 새로운 지표가 될 부분으로 관심을 모았다.
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주관으로 교회 안팎에서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황사영 백서 등 그간 미묘한 논란을 불어 모은 다양한 주제들이 선보여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고려대 조광(한국사학과) 교수가 신유박해 전후 희생자 등 순교와 관련된 150여명의 인물을 집대성해 최초로 공개한 500쪽 안팎의 책 20권 분량의 자료는 신유박해는 물론 한국교회사 연구 방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조강연자로 나선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 김진소 신부는 「신유박해 순교자 현양운동의 의의」를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순교자가 일상생활을 통해 보여준 믿음과 삶을 고려하지 않고 순교 자체만을 평가한다면 결과만을 강조하는 결과주의에 빠지거나 주검 숭배가 되고 만다』고 밝히고 『한국교회의 핵심인 순교신심의 본질을 올바로 밝히기 위해 신유박해 순교자드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김신부는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삶을 올바로 조명함으로써 신앙선조들의 삶의 방식과 영성의 뿌리를 찾아 서양종속화의 길을 걸어온 오늘의 교회의 모습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진 주제발표는 신유박해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더불어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둘러싼 신용적·절차적 연구가 어우러져 한구교회가 펼치고 있는 시복·시성운동의 새로운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제1주제 발표자로 나선 전주재 변주승 교수는 「신유박해의 정치적 배경에 관한 연구」에서 기존의 접근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민중종교운동사와 사회사적 접근을 통해 과거 당쟁사 중심의 연구에 새로움을 더했다.
변교수는 정조대와 순조초에 빈발한 민란에 주목하고 이를 전후한 집권세력의 재편과 현실의 억압구조를 타파하려 직접 나서고 있는 민초들의 민중사상에 주목했다.
그는 이 시기 민중들의 저항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면서 천주교가 민중사회로 파고들었음을 지적하고 『다른 민중종교운동에 비해 지식층과 양반, 민중이 함께 진행시킴으로 인해 나타나는 파급력과 폭발성이 박해의 출발점이 됐다』고 밝혔다.
서강대 정두희(사학과) 교수는 「신유박해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한 발표에서 『주문모 신부-유항검-황사영으로 이어지는 외부세력과의 연계 움직임이 조선 조정의 강경한 분위기를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토론자로 나선 가톨릭대 박광용 교수는 신유박해의 위상을 한국교회사에서 더 나아가 한국사회사와 연계시킴으로써 호응을 얻었다.
박교수는 신유박해가 한국교회가 토착적으로 교회로 뿌리내리는 시기에 가해져 이후 외세의존적으로 변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박해로 정약종의 「주교요지」등이 꾸준히 나올 수 있는 토착화의 지적 기반이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피해를 입었다』는 평가와 함께 『성리학적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관을 마련해 나가던 당대 진보적 지식인들의 노력이 뿌리뽑힘으로써 한국ㄱ사회가 근대화에 뒤지는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는 등 한국교회 뿐 아니라 한국근세사의 좌절의 역사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주제발표에 나선 대전가톨릭대 김기만 신부는 시복시성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교황청의 1983년 특별법인 「완덕의 천상 스승」을 중심으로 한 문헌 고찰을 통해 올바른 시복시성운동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김신부는 「시성절차법에 나타난 시복시성 절차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시성은 교황의 최종적, 확정적, 무류적 판결이니만큼 관할 교구 차원에서 진행하는 예비심사에서 올바른 절차를 통한 정확한 검증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신부는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복시성추진운동에 대해 『하느님의 종이 시복 시성되는데 장애가 되는 사유와 절차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교회의 공적 경배가 남용돼 시성의 본래적 의미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지역교회가 추진하는 시복시성이 ㅂ보편교회에서 지니는 의미를 반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제한했다.
한편 종합토론에서 참가자들은 새 천년기와 더불어 시작되는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이 한구교회의 전통인 순교신심을 되살리고 순교자들의 영성을 새롭게 꽃피울 수 있는 교회사에 귀중한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를 마련했다.
특히 이들은 시복시성추진운동이 신중하게 진행되지 못함으로써 초래될 수 있는 「부박한 성장주의」교회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고 교회 전 성원의 힘을 모아낼 수 있는 전교회적 차원의 모색을 해나가기로 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