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대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졸업을 하고도 입사 연한을 넘길 때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대학졸업자가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견뎌내지 못하고 실업의 벼랑에 몰린 가장들도 적잖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갖추고 있는 사회안전망으로는 실업은 잠시 쉬는 대기기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통의 나락이다.
실업이 안겨다주는 고통의 현실, 사회안전망 부재로오는 가정파괴, 그래서 실업은 그 자체로 비복음적이다.
실업의 본질
실업은 「일할 능력과 의사를 가지고 있으나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로 정의된다. 경제학에서는 실업을 마찰적 실업을 비롯해 구조적·경기적·계절적 실업 등으로 나눈다.
선진국의 실업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마찰적 실업」이 대부분이다. 이 실업은 자연 실업률로 통계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산업의 서양화나 수요변화를 예측하지 못해 나타나는 「구조적 실업」과 경제불황에 따른 노동력에 대한 수요부족으로 파생되는 「경기적 실업」이 문제가 된다. 이런 실업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복지제도를 마련해두고 있다.
우리의 경우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이런 실업의 경우도 사회공동의 책임이 아니라 한 개인의 모자람으로 치부되고 만다. 이런 인식으로 실업은 더욱 고통스런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실업이 낳는 폐해는 개인적 손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의 실업
우리의 경우 실업은 가히 파괴적이다. 사회안전망이 부족해 실업은 단순히 한 개인의 어려움이 아니라 가족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세대!」20대와 40대,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야 할 세대가 현재 스스로를 지칭하며 겪고 있는 두려움의 실체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개인의 힘만으로 새로운 환경이 요구하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실업난은 구조적 실업과 마찰적 실업, 경기불황이 한꺼번에 겹친 복합 실업의 양상을 띠고 있다. IMF때의 실업은 경기적 요인이 컸던 탓에 경기가 나아지면서 실업률이 빠른 속도로 떨어졌으나 최근 실업은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구조적 성격이 강해 장기 실업이 우려된다. 현재도 1년 이상 직업을 갖지 못한 장기 실업자가 전체 실업자중 15%를 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실업대란 속에서 40대 실직자와 그 가정은 서서히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악성 실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구조조정에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이미 지난해 12월말 실업률이 다시 4%대로 올라서며 100만 실업자 시대가 닥쳤다. 이 가운데 20대(3만2천명)의 실업률 증가가 두드러져 개인적 불운과 함께 사회적 손실 또한 적지 않다. 특히 20대 대졸자들의 경우 면접은 커녕 입사 원서를 내는 것 조차 하늘의 별 따기다.
올해 전국 214개 대학에서 쏟아져 나오는 졸업예정자는 21만4000여명. 취업 재수·삼수생 17만여명까지 합하면 취업 대기자는 40만명에 육박하나 일자리는 8만여개 수준이어서 졸업과 동시에 멀쩡한 실업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올 2월 서울 ㅎ대 사회학과 졸업 예정인 김모(26)씨는 『입사원서를 40여 군데나 냈는데 다 떨어졌다』며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런 심정은 비단 김씨만의 것이 아니다. 현재 불고 있는 고시나 유학, 대학원 진학 열풍은 이들이 겪고 있는 아픈 현실의 단면이다.
이 가운데 더 좁은 취업문에 선 이들도 있다. 여성들이 그들,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러 나온 주부 가장들은 살림 걱정은 커녕 잘리지 않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 힘은 생활을 잇고 있다. 대졸 여성들도 취업난에 허덕이는 마당에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파출부, 청소원, 식당일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대졸 여성들의 경우 취업난과 남녀 불평등구조라는 이중의 벽을 뚫어야 한다. 가까스로 바늘구멍을 뚫어도 임금은 기대 이하. 지난해 3/4분기 여성 대졸자의 임금 중 60~80만원이 35.3%로 가장 높고, 직업도 단순노무직이 35.9%로 가장 높았다.
교회 속에서의 실업
실업으로 인한 고통의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교회는 실업의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사목적 차원에서 다양한 모색이 이뤄져왔고 이 가운데 나름대로 역량을 모아내며 성과를 거둔 부분도 적지 않았다.
교회의 그간 활동을 대별해 보면 노동자협동조합과 같은 일자리 나누기를 비롯해 서강대의 「IMF특별장학금」등 장학금 무료 지급, 무료식장, 무료진료·법률 상담, 수원 송탄본당 등의 실직가정지원을 위한 봉급나누기, 실직자돕기 음악회 등 「나눔형」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자원재활용운동, 아나바다 장터, 교복 물려주기 등 「절약형」도 확장된 나눔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끈 금 모으기를 비롯, 외국인노동자 돕기, 본다 차원의 기도운동, 정신·신앙쇄신을 위한 영성교육과 피정 및 특강, 채무 탕감 차원에서 펼쳐진 교무금 탕감, 명동 평화의 집 등 IMF 이후 붐을 이루다시피 한 실직자 쉼터 등 「정신·생활 계도형」노력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노력은 그러나 본질적으로 어려움을 함께 한다는 차원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순간순간의 고통을 나누고 완화시키며 사회의 틈새를 메웠다는 점에서 이런 노력들은 평가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이 빛과 소금으로서의 적절한 노력이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금 모으기 등으로 사회의 분위기를 이끌었다는 사실에 자족하기에 앞서 현재도 수그러지지 않는 고통의 그림자를 보며 새롭게 할 부분이 적잖다.
교회만의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는 움직임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점은 특히나 아쉬움을 더하는 부분이다. 교회 차원의 실직자를 위한 전국적 모색이라 할 한국가톨릭실직노숙자복지협의회의 결성이 이뤄진 것도 지난 99년 11월에서였다. 이런 단체들을 통한 교회의 실업대책도 크게 △실업자 생활안정 △일자리 정보 제공 △취업알선 등 3개 분야가 대부분이어서 정부의 그것과 엇비슷했다. 특히 교회가 펼쳐온 활동은 실업대책이라기보다는 물질을 나누는 빈곤 대책의 성격이 강했다는 점에서 향후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즉, 단기 일자리정보 제공과 같은 활동에서 정책적인 분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한 방안이다.
이 점에서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노동시간 줄이기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은 교회가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제 프랑스 경우 노동시간을 36시간까지 대폭 줄이면서 실업극복의 의지를 현실적 힘으로 바꿔낼 수 있었다. 이 가운데 ㄱ회 등 족교계가 적잖은 힘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가난한 이들이라 할 근로계층을 위한 노동법 수준은 국제기준에 크게 미달한다. 주 40시간근로제만해도 이미 미국은 1935년 뉴딜정책 때 시작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과로사 국가, 장시간 노동국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독일은 70년대 실업자 450만이 넘을 때도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노동시간단축과 5일근무를 4일근무로 전환하고 그래도 실업자 문제가 해소되지 않자 3일근무와 시간단축으로 그 위기를 넘긴 바 있다.
따라서 교회가 사목적 차원에서 전사회적으로 함게 모색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가능한 대안을 찾아내고 몸소 실천해 나가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럴 때 사회의 역량을 모아 나가는 가운데 교회가 고유한 몫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나 정치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숨죽이기보다 가난한 이들의 편에 적극 섬으로써 이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교회가 돼야 할 것이다.
■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실업풍경 ① : 한국
앗! 8시다. 인기척에 놀라 눈을 뜬 김(38)씨는 당혹스러움을 지우지 못하고 덮고 있던 옷가지를 추스르며 황급히 지하역사 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아는 사람의 눈에라도 띄었으면 어쩔 뻔했을지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어젯잠 추위를 면하려고 황씨와 마신 술이 당혹감을 안겨다준 주범이었다.
처음 집을 나와 지하철역 주변을 배회하다 만난 황씨였다. 처음엔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줄 알고 존대를 했는데 알고 보니 두 살 차이였다.
애초엔 가까워질 생각이 없었으나 거리에서 몇 차례 만나다 보니 안면이 생겨서 가끔씩 술도 함께 하게된 사람이다. 황씨에 비해 돌아갈 가족이 있는 김씨는 요즘 들어 식구들 생각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김씨가 발길을 돌린곳은 2호선 역사. 직장인들의 출근전쟁이 끝나고 나면 2호선을 타고 추위에 언 몸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한동안 서울 시내를 돌 참이다. 11시쯤 시청역에서 내리면 황씨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터다. 그러면 황씨를 따라 늦은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집을 나온 지 석달, 아내는 눈치를 챘는지 전화를 할 때마다 걱정투의 말이 늘고 있었다. 장기출장을 핑계로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래도 두 아이 아빠로서의 자존심때문이었다. 출근할 때마다 뺨에 입을 맞추며 얼굴을 대하기 미한해진 것은 지난해말 10여년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였다.
친구들에게 빌린 돈으로 월급이랍시고 아내의 통장에 돈을 부치고 최대한 아꼈지만 주머니엔 얼마 남아있지 않다. 신문을 열심히 주워 보며 직장을 알아봤지만 이미 마흔에 가까워오는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미래를 생각하기 싫어진다. 그래서 거리로 나선 후 김씨는 어느새 술이 부쩍 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아무 직장이나 들어가게 되면 빨리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야지요』
실업풍경 ② : 프랑스
프라스 생활만 20년이 넘는 교포 김형석(가명)씨가 실업자 신세가 된 것은 지난 98년. 프랑스의 소유의 면세점에서 한국부 지배인으로 일해온 그는 IMF가 닥치면서 한해 50만명씩 파리를 찾던 관광객 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문을 닫게 된 한국부와 함께 직장을 잃었다.
유학생 생활을 거쳐 직장생활 10년 경력의 김씨가 면세점에서 받던 월급은 1만1000프랑(230만원 안팎). 실직 후 매달 그가 받는 실업자 수당은 9000프랑(200만원). 월급의 80%에 해당한다. 실업자 월급(?)은 매달 김씨의 은행구좌로 자동 입금되고 있다.
남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실업자 신세가 된 그는 그러나 실업자수당도 수당이지만, 그보다 여러 혜택에 놀라고 있다. 세금의 대폭적인 감면, 재취업을 위한 각종 무료교육, 각종 실업자 혜택…. 실업자는 영화관 입장료나 기차 운임도 절반이다.
재취업을 위한 면접 때문에 다른 지방에 갈 때 열차나 항공편 등 교통비는 국가가 부담해 준다.
김씨의 경우처럼 프랑스는 국가차원에서 취업을 보자, 고졸자이든 대졸자든 일단 노동시장에 나오면 나라가 직장을 구해서 취업시기커나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실업수당을 지급한다. 직장경력이 전무한 실업자도 정부로부터 매달 4000프랑(약 856만원) 정도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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