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의 자세로 80평생 시의 곁을 걸어온 한국 시단의 거목 구상 시인(82·세례자 요한)이 삶과 신앙의 성찰(省察)을 담은 신앙시집 「두 이레 강아지만큼이라도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성바오로딸/220쪽/6700원>」를 펴냈다. 평소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던 김기창 화백의 죽음 때문인지 지난 98년 교통사고 이후 부쩍 건강이 좋지 않은 노 시인의 시에는 인생의 황혼을 맞은 쓸쓸한 심회와 임종을 준비하는 신앙인의 겸양한 마음이 그대로 배어있다.
『이제사 비로소/두 이레 강아지만큼/은총에 눈이 뜬다/…/이제 나에게는 나의 무능과/무력도 감사하고/앞으로 살기에 필요로 하는 것은/오직 마음의 순결/그 하나 뿐이로다』(은총에 눈을 뜨니)
「두 이레 강아지만큼이라도」마음의 눈을 뜨게 해달라는 작가의 기도 속에는 「원죄의 되풀이」「거듭남」「부끄러움」등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평생을 신앙심으로 올곧게 시작(時作)에 몰두해온 시인에게도 하느님 앞으로 나서는 날이 가까워 온 지금에는 한없이 부끄럽노라는 솔직한 고백이 담여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다양한 시집과 수상집 등을 꾸준히 내놓으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여온 구상 시인의 10번째 시집 「두 이레…」는 그 동안 지상에 발표됐던 대표적인 신앙시들을 발췌해서 묶은 시집으로 「신앙시집」의 이름으로는 처음으로 발간된 시집이다.
「초토의 시」를 영역한 안토니 티그 수사는 시집 서문에서 『거의 시는 순간적 깨달음의 결과가 아니라 경험과 독서, 고뇌아 명상 그리고 대화와 기도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일상사에 숨어있는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말을 찾아내려는 하루하루의 시도에서 나오는 시들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시인이 삶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반성하는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진다.
시 하나 하나가 삶 속의 깊은 고외와 묵상속에서 배어 나온 신앙 고백,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읊조림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죽음을 넘어 피안에다 피울 찬란하고도 불멸하는 꿈을 껴안고 백금같이 빛나는 노년을 살자」는 작가의 남은 삶에 대한 열망 또한 역력하다.
안토니 수사가 『구상 시인의 일생은 진리의 모색이며 그의 시는 그 길을 따라간 발자취의 기록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듯 그의 여든 두 해 삶과 신앙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발간한 이 책에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의 길을 찾지 못해 『날마다 치르는 신의 장례』를 노래하던 일본 시절부터 한국의 선구적 가톨릭 시인으로서 오늘의 지위에 이르기까지의 시 세계의 뚜렷하고 끊임없는 발전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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