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동안 자동차 정비업을 해왔습니다. 다치기 쉬운 업종인데 여태까지 손끝하나 다치지 않도록 해주신 주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새로운 길을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때 우연히 가톨릭신문을 통해 ‘디딤길’을 알게 됐습니다.”
수원교구 도보성지순례길인 ‘디딤길’은 수원교구 청소년국(국장 이건복 신부)이 지난 1년여 간 도보순례연구팀을 운영하며 누구나 손쉽게 수원교구의 모든 성지를 도보로 성지 순례할 수 있도록 마련한 길이다. 이 디딤길을 모두 순례한 김천명(파트리치오·58·수원 권선동본당)씨는 21일 ‘디딤길’ 완주자 1호로서 상패와 강복장을 받았다. 김씨는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정리하면서 도보성지순례를 결심하고 지난 5월 2~29일 동안 수원교구 내 15개 성지를 잇는 ‘디딤길’을 따라 약 400km를 걸었다.
그러나 순례는 생각보다 순탄치 못했다. 첫날부터 잡힌 물집은 마지막 날까지 걸음을 힘들게 했다. 지방도로는 노변이 없는 곳이 많아 차도 위를 걷는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김씨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숙소와 식사 문제였다. 지방이나 외딴 곳에 있는 성지 주변에는 숙식시설이 드물어 저녁에 성지에 도착하면 택시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가 다음날 아침 성지로 돌아와 출발하는 일도 많았다.
“힘들어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마음속에 어떤 씨앗이 뿌려져 성지순례를 시작했을텐데 씨를 발아시켜 놓고 꽃을 못 피우면 안 되지 않을까? 어떤 꽃이 피어날까? 이런 기대감, 희망이 있었습니다.”
순례 길이 고통의 길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산북공소에서 최덕기 주교를 만나 함께 식사하기도 하고 순례를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 자연을 보며 하느님이 함께하심을 느끼고 저절로 기도하게 됐다. 김씨가 도보성지순례 기간 중 바친 묵주기도만 1700여 단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가슴을 뒤흔드는 감동도 있었다.
“순례 마지막 목적지로 요당리 성지를 갔는데 그때가 황혼 무렵이었습니다. 거기서 마침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도보성지순례를 마치면서 아름답게 살아서 아름다운 황혼을 보여주는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400여km의 ‘디딤길’ 도보순례를 마쳤지만 김씨의 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보성지순례 중에 순례자 미사에 참례하지 못했던 성지를 찾아 미사를 드리고 있다. 또 순례한 성지들에 대해 공부하며 순례 중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도 알아가고 있다.
“제가 ‘디딤길’완주 1호라고 하는데 사실 앞으로 순례 길을 걸을 모든 사람들도 완주하면 그 사람의 인생에서 그 사람이 바로 1호입니다. 그저 저를 보고 ‘머리 허연 이런 사람도 완주했는데 나도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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