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의 가르침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예(禮)가 지켜지지 않으면 나라가 기울고, 의(義)가 없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고, 염(廉)이 없어지면 나라가 전복되고, 치(恥)가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나라가 기울면 바르게 고칠 수 있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다시 편안하게 할 수 있고 나라가 전복되면 다시 일으킬 수 있으나 나라가 멸망하면 다시 회복시킬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잘못보다 더 큰 망국적 행위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부처님도 유교경(遺敎經)에서 부끄러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부끄러워할 줄 알아라. 부끄러움의 옷은 모든 장식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 - 중략 - 항상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잠시도 그 생각을 버리지 말하야 한다. 만일 부끄러워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모든 공덕을 잃게 될 것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들은 곧 착한 법을 가질 수 있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짐승과도 다를 바 없다』라고.
길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수줍어하는 마음과 양심의 가책을 받는 모습을 표현하는 부끄러움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덕이고 어쩌면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덕목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우리네 조상들이 남의 칭찬에 낯을 붉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ㅏ마 입을 열어 말을 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의 여인네 상을 최고의 여성상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오늘 복음에는 몇 가지 단절어를 포함해 소경의 비유와 들보의 비유가 나온다.
두 가지 비유 모두 그 뜻은 명확하다. 남의 길잡이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눈을 떠야 된다는 것, 그리고 남의 허물을 보고 지적하기에 앞서 자신의 허물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신 의도는 그 당시 유대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행동 때문이라고 본다. 예수님은 종종 율법의 세칙에 얽매여 율법의 참뜻을 보지 못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전부 아는 양 행동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예수님은 소경이라고 질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늘 소경의 비유와 들보의 비유는 우선적으로 백성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잘못 즉, 스스로 남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자신들을 의인으로 착각하고 자신을 반성하기에 앞서 남을 판단하는 지도자들의 잘못에 대한 직책일 것이다.
그러나 남을 가르치고 지도하고자 하는 것은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욕구가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는 기본 욕구이고, 인간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고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고 교육자가 학생을 장상이 제자들을 지도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류 유산의 계승과 발전, 개인의 인격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요구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오늘 복음은 가르침과 배움의 현장에서 가르침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데 가장 주요한 요인인, 지도자의 겸손함과 개방성을 지니기 위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이라는 것이다. 즉,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은 타인을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가르침은 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정한 개혁과 회심은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이 비유들이 가지는 뜻인 것이다.
오늘 이 복음에 나와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진정한 개혁과 회심은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이 비유들이 가지는 뜻인 것이다.
오늘 이 복음에 나와있는 내용들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이 앞의 유교와 불교에서 최고의 덕으로 여기는 부끄러움의 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수 있을 때 필연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만이 타인의 길잡이라는 오만함과 타인을 판단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한국 사회에서는 눈만 뜨면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개혁, 개혁이란 소리를 듣게된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개혁에 뒤쳐져 있다는 반등일 것이고 우리사회는 개혁되어야만 될 사회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에 웬지 쓸쓸한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개쳑의 합창 속에 살면서도 우리 모두는 개혁에 그다지 큰 희망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대통령과 여당부터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또 하나는 누구나 다 개혁을 외치지만 자기자신을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정치지도자나 언론,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이나 기업가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시대의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와 「부끄러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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